나의 2020년 인생 키워드는 이것이다

by 유미작가


오랫동안 차트를 훑어보던 의사가 드디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췄다.


"인생에서 중요한 게 뭡니까?

아이를 가지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나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죠?

계속 회사의 노예나 하인 같은 인생을 살 건가요?

이렇게 야근과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면서 임신이 되기를 바랍니까?"


2019년 3월 휴직을 결심하였다.


의사 선생님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사의 노예처럼 살 것이냐, 회사의 하인처럼 살 것이냐고 소리치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특별히 변명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휴직이 어느덧 반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껏 인생을 크게 고민하면서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다만, 주어진 대로, 물 흐르는 대로 그렇게 인생이 흘러왔던 것 같다. 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열정과 끈기로 그때그때 나에게 주어진 과제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아이 가지기'


그동안 내가 도전했던 과제들과는 유형이 조금 다른 새로운 과제를 맞닥뜨리고 꽤 오래 방황을 하였다.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의사 선생님께 그런 호통을 들은 것이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제임스 라이언 학장은 책 <하버드 마지막 강의>에서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 중 하나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뽑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의 신념이나 믿음 그리고 인생의 목표에서 가장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해 준다고 하였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눈물을 쏟고, 길게 생각할 것 없이 결정했다. 회사에서의 성취와 성공만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나에게 보다 크고 근본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그래서 꼭 이루고픈 목표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세우는 것임을 깨달았다.


지난 1년간 업무와 임신 준비를 병행하면서 여러 커리어 패스 제의들을 사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 속에 마음 한편에 계속 아쉬움과 좌절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따라서 트랙에서 내려온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2019년 나의 키워드는 '결단'이었다.


내 인생의 중심축이 되어 인생 전체를 흔들 중요한 목표를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그 목표, '가정이라는 울타리 세우기'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앎을 앎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과 실천으로 옮겼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중요한 결단의 순간이었고, 결단의 실천이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그동안 줄곧 향하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키를 전환하였을 때 저항력은 생각보다 크다. 나 역시 한동안 그 저항력에 휩쓸려 내 몸에 파도가 넘실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성공과 성취를 위한 목표에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나의 결단이 무너지지 않고 방향키가 꺾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에게 남은 과제이다. 어떻게 하면 방향키가 꺾이지 않을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세우고픈 것도 더 깊이 들어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결국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감이 상당하다. 묵직한 그 단어에 내가 오히려 눌려버릴 것 같을 때는 작은 변주가 필요하다.


수많은 딴짓으로 인생을 다채롭게 살고 계신 김민식 피디님은 올 초 출간하신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에서 ‘나는 행복한가?’라고 묻기보다 ‘이거 재미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였다. 행복이라는 관념이 너무 크고 막연해서, 그리고 행복에 집착하면 그만큼 오히려 불행이 잘 보여서 대신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는가?를 묻고, 재미없다는 답이 나오면 재미있기 위해 뭘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고 한다.


2020년 나의 키워드는 '재미'이다.


아이를 기다리는 일을 너무 맹목적이지 않게 이 시간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보내고 싶다. 최선을 다하되, 집착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휴직 후 일상이 된 블로그와 글쓰기의 순간들도 나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는지 계속 물어야 할 것이다. 재미없다는 답이 나오면 당장 그만두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재미를 느껴야 하는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다. 즉, 내가 느끼는 감정에 좀 더 예민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라는 인간이 대체 언제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는지를 알아야 2020년 1년 동안 ‘재미’라는 키워드를 잘 살리는 날들을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2020년이 끝나는 시점에 올 한 해 참 재미있게 잘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