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퇴보인가? 감사한 터닝포인트인가?

인생사 새옹지마, 또 어떤 길이 펼쳐질 것인가?

by 유미작가

​한창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시기, 다양한 기회들이 내 앞에 펼쳐지려던 때에 난임 휴직을 결정했다. 회사의 규정에 맞춰 난임 휴직, 복직, 임신 휴직, 유사산 휴가, 다시 난임 휴직의 복잡한 과정을 이어가기 위해 여러 서류 작업을 요청받았다. 대체 나의 정확한 복직 일이 언제인지조차 계산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부장 진급을 했을 것이다. 휴직 전 수차례 제안받았던 주재원 자리를 모두 고사하지 않았다면 주재원을 다녀오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나갔다. 입사 이후 단 한 번도 진급을 걱정해 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동기들보다 1년 빨리 진급을 하기도 했기에 이런 결과가 허탈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복직한 해에는 연차가 없어 휴가를 가지도 못했다. 육아휴직의 경우 2019년에 새롭게 제도 개정이 되어 2020년부터는 1년 육아 휴직기간 동안에도 연차가 쌓이지만, 난임 휴직은 그렇지 않았다. 휴직 전 쌓았던 연차가 이월되지도 않아 복직한 해에 쓸 수 있는 휴가가 0개였다. 회사에서 난임 휴직을 쓰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아마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국가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난임 휴직 제도가 마련된 회사 자체가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난임 휴직을 사용해본 당사자 입장에서는 육아휴직의 연장선에서 논의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소수의 대상자들이 내는 목소리는 웅얼거림으로 묻혔다.


난임 휴직으로 이런 답답한 상황들이 내 몫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의 잠시 멈춤을 후회하지 않았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선택을 앞두고 이로 인해 내가 포기하게 될 리스트가 그려졌다. 이미 결정한 일을 뒤돌아보아야 속만 쓰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멈칫했다. 휴직 초심자인 나는 갑자기 주어진 여유도 낯설기만 했다. 할 일이 없다는 게 어색하고 초조했다. 내게 주어진 너무 많은 시간을 어찌 써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가 내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줄은 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커리어가 잠시 멈춰 섰던 그때 나는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나아가 볼 여유가 생겼다. 수차례 이어간 시험관 시술을 통해 난임 휴직의 목적인 임신과 출산을 달성하지 못했으니 누군가는 실패한 1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동의하지 않는다. 내 인생 전체를 보았을 때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쉼표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주재원이나 부장 진급이 아닌 행복한 가정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길이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서평을 쓰고, 도서 인플루언서에 선정되고,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한 습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꿈꾸는 이들을 위한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며, 타인의 성장을 돕는 일을 하게 되다니. 쉼표를 찍은 덕분에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길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만이었다면 과연 지속할 수 있었을까? 수익화가 되지 않거나, 생각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혹은 복직 후 다시 마약 같은 월급이 통장에 찍혔을 때 아마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회사만 다녀도 피곤한데 그런 일들을 왜 합니까?"라고 내게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좋아서." 내가 온라인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굳이 카테고리 화하자면 '취미'라 할 수 있겠다.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듯 즐겁고 좋아서 하는 활동들 중 하나인 셈이다.

행복하고 기쁜 일만 가득한 삶이 나쁠 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반대의 경우가 꼭 최악은 아니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존재하지 않듯,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경우는 잘 없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도 만나기 마련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유산이나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처럼 사람의 의지로 헤쳐나갈 수 없는 일들. 슬픔은 기쁨을 더 진하게 느끼게 해주기도 하고, 실제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어주기도 한다. 요즘 나는 이런 나의 경험과 느낌을 담은 책을 쓰고 있다.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분기점을 뜻하는 터닝포인트는 삶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전환점을 말할 때도 자주 쓰인다. 세월이 더 흘러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본다면 아이러니하게 나의 커리어가 퇴보했던 1년의 난임 휴직 기간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아직 나는 인생의 반환점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살아온 날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고, 그 기간 동안 또 다른 몇 번의 풍랑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삶이 다시 한번 바닥을 찍는다면, 그때는 또 어떤 새로운 길을 찾게 될지, 대체 얼마나 높게 솟아오를지 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