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젊음이 없지, 자신감이 없겠냐?

디바의 귀한 '엄정화' (ft. 놀면뭐하니 환불원정대)

by 유미작가

출근버스를 타러 가는 짧은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길게 늘어뜨린 목 뒤로 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이제 머리를 묶어야 할 계절이네.' 피부로 느껴지는 여름이 지난여름 우리를 추억여행에 빠트렸던 예능 프로 <놀면 뭐 하니>의 환불원정대를 떠올리게 했다.


이효리가 농담처럼 던진 한 마디에 이효리, 엄정화, 제시, 화사 이렇게 4명의 센 언니들로 구성된 팀이 결성되었다.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넷 중 나의 시선은 제시나 화사처럼 분명한 자신만의 컬러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을 제치고, 이효리와 엄정화를 향했다. 40대 이효리도, 50대 엄정화도 반짝반짝 눈이 부셨다. 동시대를 살아온 나는 괜히 뿌듯해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나랑 비슷하게 늙어가던 친구가 짜잔 하고 멋진 모습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에 내 일도 아닌데 괜히 용기도 나고 흥분되는 그런 느낌.

특히 이 중 엄정화에 계속 눈길이 갔다. 첫 등장 때의 당당함과 달리 유재석과의 개별 만남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다른 3명과 달리 어쩐지 위축돼 보였다.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갑상샘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그 이후 왼쪽 성대 신경이 마비되면서 성대가 붙지 않아 공기가 새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원래 편안하게 내던 음역대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그녀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고 그때의 고통을 토로했다.



나는 성대가 아픈 사람이다.
나는 예전처럼 높은 음역대를 소화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노래를 할 수 없다.


그녀의 머릿속 부정 회로는 계속 자가발전을 하며 그녀를 위축시켰으리라.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모습 속에서 언뜻 내가 보였다면 과장일까?

반복된 난임 시술 그리고 유산으로 내 체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나는 내 자신이 상위 1%에 들만큼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보다 똑똑한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센스와 체력으로 부족한 지능의 갭을 채웠다. 그런데 임신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내 비장의 카드인 체력은 고갈되어 갔다. 의사 선생님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셨지만, 잦은 수면 마취가 내 기억력 감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나는 유산과 수면 마취를 자주 한 사람이다.
나는 예전처럼 체력과 기억력이 좋지 않다.
나는 이제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나 역시 그녀처럼 부정 회로를 자가발전시켰다. 이렇게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하니 자신감, 자존감, 열정 등등 좋은 것들은 죄다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백은 무기력과 우울이 무섭게 채워나갔다.

엄정화는 제작자로 나선 유재석과의 개별 면담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용기 있게 도움을 청했다. 유재석의 도움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수술 전 자신이 늘 부르던 음역대의 소리를 내는 것이 여전히 두려웠지만,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믿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 도전하였다.

'도전'이라는 단어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젊음과 짝이 맞아 보인다. 나이 든 여자들의 새로운 도전은 낯설게 느껴진다. 예전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봐, 후배들처럼 춤을 잘 출 수 없을까 봐 걱정하던 50대 엄정화처럼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되는 이유 1개를 겨우 떠올리면 곧이어 안 되는 이유 10개가 찾지도 않았는데 주르륵 딸려 나왔다.

회를 거듭할수록 엄정화는 용기를 냈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마침내 아이돌들의 무대인 음악 방송에 섰다. 진정 디바의 귀환이었다. 50대라고 보기 어려운 외모와 몸매,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라이브와 댄스 실력을 보여주었다.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내 일도 아닌데 또 오지랖이 발동했다. 주책맞게 음악 방송을 보면서 눈가가 뜨거워지는 느낌이라니.

60대임에도 콘서트에서 격렬한 댄스곡을 라이브로 소화하는 마돈나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 앞에 엄정화가 있었다. <놀면 뭐 하니> 방송에서도 그녀의 이름 앞에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를 자주 붙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한국의 마돈나 이런 거 아니고, 그냥 캡숑 짱 멋진 우리들의 정화 언니였다. 정화 언니가 60이 되고 70이 되어도 여전히 섹시한 한국의 디바로 무대에 서주기를 기대한다. 나도 언니를 보면서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허리 붙잡고 웨이브를 해 보일 테다. 남편아~ 말리지 말아라!! 우리가 젊음이 없지, 자신감이 없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