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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래 May 21. 2024

그저 예뻐해줄래요.

부모되기가 어려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저출산시대, 부모되는 것이 두려운 시대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바보라는 말이 진담처럼 농담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아이를 안 낳는 진짜 이유... / 최재천 교수 (풀버전) 그런 시대에 나는 아이가 넷이다. 계획해서 낳았냐, 실수냐, 라는 질문을 서슴치 않고 묻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하늘에서준 선물이라고 말하면서 머쓱하게 웃고 마는 아이 넷의 엄마다. 


아이가 넷이니까 육아의 달인이시겠어요. 라며 이것저것 묻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나는 육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솔직히 첫째, 둘째까지는 조금 잘난척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 하고 싶은 날들이다. 엄마가 하는 대로 아이가 움직인다고 생각했기에 엄마가 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주면 책 읽는 아이로 자라는 거라고, 엄마가 건강한 음식을 주면 건강하게 아이가 크는 거라고 원인과 결과가 당연하게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하. 지. 만. 


셋째, 넷째가 태어나고 나의 한계를 넘은 일들이 많아지고, 네 개의 색을 넘어 다양한 존재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아이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되는 존재는 당연히 아니며, 나 또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깨닫게 된거다. 


수많은 육아서와 다큐멘터리를 참고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엄마로서 살았었는데, 더 이상 그런 조언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어떻게 해라 라는 식의 조언을 하는 책은 더 이상 읽기 어려웠다. 엄마가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아이 넷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는 것에 질렸다. 아이가 하나 또는 둘이었다면 그 책의 조언들을 따라하며 이뤄가는 성취감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지 않을까? 내가 하는 대로 아이가 따라온다는 환상을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엄마가 해야하는 수많은 의무와 책임들을 꼭 지켜야 좋은 엄마일까? 대부분 아래의 세 가지 정도를 꼭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 하루에 다섯 권씩 책 읽어주기, 영어책과 한글책을 골고루 읽어주기

-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여행하기 

- 건강한 음식으로 삼시세끼 식사하기 


물론, 이 세 가지는 아주 중요하다. 인간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데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좋은 엄마가 아닐까?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좋은 엄마가 아닐까?

여행을 가지 않으면 좋은 부모가 아닐까?

건강한 음식을 잘 주지 못하면 좋은 부모가 아닐까?


반대로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 그건 부모가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사회에서 부모에게 수많은 의무와 짐들을 주다보니 부모되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것 같으면 부모되기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효율성을 따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나도 이렇게 부모되기의 할 일들을 다 알았다면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되기가 정말 이래야 할까? 이 세 가지를 잘 하면 정말 좋은 부모일까? 한국 밖의 부모들도 이런 조건들을 달고 육아를 하고 있을까? 자꾸 묻게 된다. 나도 '네가 좋은 부모니? 아니 좋은 부모 말고, 정말 부모니?' 라고 스스로 물으며 작아지는 밤들을 많이 보냈다. 여전히 부모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고민하던 가운데 요즘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내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다. 


어제 밤, 은수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은수야, 한글을 읽어야 할 나이야. 이제 읽어보자."라 했다. 한국나이 7살, 입학을 앞둔 은수에게 한글을 읽지 못하면 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렵고, 책을 읽지 못하면 배우기도 어렵다고 두려움과 불안을 주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까지 말하지 못하냐고 스스로 괴로워하던 나에게 은수가 말했다. 

"엄마,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라며 울먹였다. "나도 한글 읽고 싶은데 잘 안 돼..." 


그런 아이의 눈을 보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해야할 일은 그저 "그래 그래" 하면서 안아주는 일이었다.


그 날 밤, 가만히 아이 넷이 조르르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짐을 했다. 


"그냥. 예뻐해주자. 그게 내가 할 일이다."


부모가 할 일? 태어난 아이를 예뻐해주는 일이다. 그러면 "예뻐해주는 게 뭘까?" 우쭈쭈 하면서 말을 다 들어주는 걸까, 그건 아닐거다. 그래서 "그냥 예뻐해주는 엄마"로서 살아보기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 과정을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안 예쁠 때도 있는데(어쩌면 더 많아지는데) 그럴 때도 예뻐해주는 게 가능할까, 궁금하다. 그 추상적인 말, 예뻐해주는 것, 그냥 그저 예뻐해주는 것. 그걸 한 번 몸으로 살아보자.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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