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가 아주 심한 수학시간

3학년 수학시간

by 동그래



두번째 찾은 곳은 3학년 교실, 마침 수학을 한다고 하셨다.

시간표는 정해진 반도 있지만, 그날 그날 선생님이 운영하기도 하신다.

이 반의 담임 선생님은 42년된 고경력 선생님, 은퇴하시고 파트타임으로 주 3회 수업을 하신다.

(3번 정도 나오니 아주 좋다고, 아이들도 계속 예쁘고, 기운도 나고 좋다고 하셨다. 부러웠다.)



세 자리 수 - 세 자리 수 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먼저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마치고 와서 warm up이 필요하기에 더 쉬운 문제를 주었다.

아이들은 각 수준에 따라 문제를 받았다. 이전 시간에 푼 것을 보고 선생님이 단계를 제시해주었다.

1단계는 12-8 같은 문제

2단계는 24-15 수준

3단계는 35-19 수준



tempImagePEdOMv.heic
tempImageufbJ7r.heic

정해진 시간에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수학 시간에 레벨로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세 자리 수 - 세 자리수인데, 받아내림이 한 두번 있는 거였다.


600 - 167 같은 문제는 1/3 정도의 아이가 풀지 못해서 손을 들었다.

572-160 같은 문제는 더하기를 하는 아이도 있고, 자리수의 개념을 잘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1/3 정도 아이들은 술술 문제를 풀었다.


격차가 심했다. 두 자리 수 - 한 자리수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줘야 하는지 몰라서 나도 고민이 되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하고 도와주었다.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이 배우려는 태도가 있다는 점이었다. 모르지만, 배우고 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손을 들고 도움을 요청했고, 할 수 있는 한 풀려고 했다. 손가락을 이용하고, 그림을 그려보면서 풀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좋았다. 후에 선생님과 이야기 나눴는데, 아이들에게 이런 태도가 있어서 참 좋다고 하셨다. 모르는 것은 당연하니까 알아가려고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가르치셨다고 했다. 역시 경력자 선생님은 다르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는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나도 경력자 교사로서, 보는 눈이 여전히 있다보니 자꾸 시선이 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협력해서 그 수학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냈는데, 꽤 보람된 시간이었다. 하려는 아이들과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고 감사한 일이니까.



아이들이 런치 리세스를 가고, 잠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캐나다에 교사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 그 이유 중 하나는 학부모의 민원이란다.

과도하게 자기 아이만 지켜달라는 것, 어떤 피해도 보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

선생님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 편이시지만 젊은 교사들은 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그만 둔단다.

아주 미안한 부분이라고 하셨다.


한국도 비슷하다. 내가 저경력 교사일 때, 아이는 낳아봤냐, 몇 살이냐는 질문을 받았으니까.

여기도 비슷하다고 한다. 몇 살이냐, 아이는 키워봤냐, 몇 년 차 교사냐 라는 질문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 아이가 어떤 피해를 보면 바로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고..


예를 들어, 리세스 시간에 아이가 놀다가 안경이 부러졌다. 리세스 시간은 담임교사가 아닌 슈퍼바이저의 책임 하에 노는 시간인데, 담임에게 와서 우리 아이 안경 부러지고 아팠던 것에 대해서 아냐고. 책임 지라고 한 학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리세스 시간은 슈퍼바이저 일이니 거기에 문의하고, 교실에 들어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약을 발라준 것은 자기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모든 것은 오피스에 문의하라고.

(이 부분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는 방과후, 주말, 학원에서 있었던 일도 모두 학교에서 책임지는 시스템인데.. 책임소재가 분명하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책임지는 구조가 정말 부럽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피스에서도 꽤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놀면서 다치기도 한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부모가 개입하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게 된다. 그런 부모들이 늘어나면 아이들도 잘 자라지 못하게 되는 거라고 우려하셨다.


젊은 교사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그 말씀을 두어번 하셨다.

나에게도 힘이 된 말씀이었다.


아이들은 사회에서 자란다. 그 사회는 무균실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많은 세균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현장이다. 그 현장을 인정하고 아이의 성장을 돕는 어른들을 신뢰하는 것, 그 중요한 가치가 이곳에서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참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캐나다 교육은, 담임 교사 혼자 서른 명의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여러 교사들이 함께, 여러 담당자들이 함께, 학교 사회를 이뤄가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건 건강한 음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