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뭐야?

너의 이름은, 나의 이름은

by 연금술사 수안


얼마 전 친한 언니와 이야기를 하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갑자기 언니는

"캐서린.. 너랑 어울려.."라고 말했다..

"그래?? 그러게 어울리네?"

그랬다.. 한 번도 난 이 이름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언니의 그 한마디에 나는 그 이름이 나에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에는 '순수'라는 뜻이 들어있다.


나에게는 캐서린이라는 이름이 어울릴까?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세상 경험이 적은 듯한 느낌을 굳이 우리가 ‘순수’ 라 부른다면 저 이름은 나에게 찰떡이지만 저 ‘순수’가 백지장처럼 맑은 순수함을 뜻한다면 그러기엔 또 굽이 굽이 인생을 많이도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를 나눈 친한 언니와 나는 서로를 부르는 찰떡 애칭이 있다.

그건 바로 강공주와 마리이다. 둘 다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나이브 한 분위기가 있고 오냐오냐 자란 티가 나는 우린 서로를 강공주와 마리라 부른다.

강공주의 공주는 말 그대로 금지옥엽 공주처럼 자란 언니를 나타내는 단어이고 강공주가 날 부르는 마리는 바로 마리 앙뜨와네트의 마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냐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시전 한 바로 그 마리 언니 말이다.


나는 긍정적이라 생각하는 내 생각들을 강공주는 늘 마리 라 놀려대고 나 또한 이제는 그 이름이 마치 나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사실 마리(Marie/Mari)라는 이름은 유럽 등지에서 주로 사용되는 여자 이름으로, 어원에 따라 '바다의', '사랑받는', '고귀한', '아이를 원하는'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라틴어 어원에서는 바다를 뜻하는 'Mare/Mari'에서 유래했으며, 심지어 성경적 어원으로는 '가장 높다', '존귀하다'는 뜻을 가져서 나는 이 이름이 상당히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다시 영어 이름을 쓸 일이 있으면 이 이름을 써야겠다 다짐할 정도로.


나는 문득 내가 수년 전 미국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 사용했던 이름은 뭐였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대체 뭐였지? 왜 생각이 안 나지?'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있었던 시간은 16개월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름을 기억해 내었다.

'Sue'

나는 그냥 내 이름 수안의 앞지를 따서 'Sue'라고 지었었다.

이 얼마나 형편없이 무성의한 작명이었던가.

지금의 나라면 한참을 고민하며 여러 의미를 생각해 내가 불릴 이름을 정했을 텐데 그때는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다시 온전히 나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여행에서 내가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에는 여행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에 대한 간단한 정의가 나온다.

그는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내가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아주 값진 것을 얻어서 출발점이던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다르다고는 할 수 없을 수도 있는데 그건 긴 우리의 여행이 원래 무언가를 얻고자 한 여행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떠난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 아이와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겠구나 그러니 어디로든 당장 떠나야 내 아이를 살릴 수 있겠구나 하는 엄마로서의 본능이었다.


그날은 큰 아이가 학교에서 무언가를 신청해야 하는데 특유의 수줍음 때문에 선생님께 아무 이야기를 하지 못해 신청을 하지 못한 일이 발단이 되었다.

나는 그런 간단한 것 하나 신청하지 못해서 어떻게 살아나가려고 하냐며 아이를 몰아붙였고 당시 무척이나 순해서 내가 누르면 누르는 대로 숨소리 하나 못 내고 나를 감당하던 큰 아이는 혼나던 중에 처음으로 작은 목소리를 내어 '죽고 싶다.'는 말과 함께 거실 창문을 열었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방울져 내릴 만큼 가슴 아픈 그 순간에 나는 어떻게 했던가?

여전히 아이를 다그쳤다.

그리고 그날 밤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졌고 나는 급히 아무 계획도 없이 달랑 비자만 받아 미국행을 택했다.


그날 전에도 나는 영어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다녀올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1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남편을 기러기 아빠로 만드는 결정은 쉽지 않았고 경제적인 부분에 닿으면 결국 접어버리고는 했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알았다.

지금 이 순간 바로잡지 않는다면 아마 난 어떤 의미로든 아이를 잃게 되리란 걸.

물리적으로 아이를 잃는 것에 겁이 난 나는

어쩌면 이미 아이의 마음을 잃었다는 것에 더 아팠었던지도 모르겠다.

십몇년만에 처음 용기를 내어 작은 소리로 한 이야기가 "죽고 싶어." 라니

나의 최선은 아이에게는 최악의 아픔이었다.

미국에 가서 몇 달이 지난 후 실제로 아이는 내게

"엄마는 늘 내가 밖에 나가서 상처받을 걸 걱정하지만, 이 세상에서 나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엄마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자신을 잊고 4남매의 육아에 온 신경을 쏟았듯이

내 세상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밖에는 없었다.

문제는 큰 집안 살림과 맏며느리로써 네 아이의 엄마로서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던 엄마와 달리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있었다.

나는 늘 아이를 바라봤고 모든 시간을 아이를 위해 사용했다.


지나침은 대개 모자람보다 해롭다.

아이만을 바라보는 동안 난 아이가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고 아이의 장점을 칭찬하는 대신 아이의 단점을 끝없이 지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특히 큰 아이가 그 시간을 견뎌낸 것이 너무 대견하고 미안하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 매 순간 나를 지켜보며 끝없이 나의 모습을 판단하고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을 결정해 준다고. 생각만 해도 너무 싫지 않은가?

그런데 그 당시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목적도 없이 떠난 그 여행은

시작은 내 아이를 위한 여행이었는데 결국 나를 찾게 된 여행이었다.

나는 이제 나를 온전한 내 이름 유수안으로 불러주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더 이상 나를 아이들의 엄마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흔치 않다. 아이들 때문에 만났다 하더라도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 그들은 나를 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유수안

그게 내가 되찾은 이름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연금술사라는 필명이 붙고 마리라는 애칭이 생겼지만 나는 엄마가 내게 주었던 저 세 글자의 이름을 되찾았고 마침내 아이들의 엄마 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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