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유럽,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1

나의 여행 추구미

by 심플정쌤

난 여행광까지는 아니었지만 여행을 꼬박꼬박 다녔던 편이다.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봐야 했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그리고 같이 여행을 갈 수 있는 마음 맞는 이들이 있어서 나는 여행을 자주 했었다. 숙소는 깨끗한 비즈니스 호텔 정도면 적당했고, 쇼핑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많이 하지는 않고, 그저 걷거나 하늘이나 바다를 보면서 생각을 하는 것을 즐긴다.

여행을 갈 때 반드시 챙기는 것은 수첩과 독서할 책이다. 긴 비행시간과 이동시간, 하루쯤 오래 앉아있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나의 사색을 적는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사색이기 때문이다. 나의 여행의 시작은 공항에서 커피 한잔을 먹고, 비행기를 타면 저장해놓은 음악을 들으면서 맥주나 와인을 먹으면서 책을 본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기록을 한다. 지난해 또는 상반기, 하반기의 나의 좋은 일과 반성할 일을 쓰고 앞으로의 나의 나아갈 방향도 생각한다. 비행기 안에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한 여행계획을 들여다보고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을 쓰며 앞으로 나의 나아갈 방향도 기록한다. 나의 여행은 사색이다.

여행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 좋다. 우선 한국을 떠나면 나의 역할들은 잠시 멈추고 그저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 좋은 시간이 된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그렇지 않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적은 짐과 정해진 목적지가 있다면 가족을 넘어 동반자의 개념으로 여행할 수 있다. 밥을 하는 사람도 청소를 하는 사람도 빨래를 하는 사람도 없고 그저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가면 되기에 말이다. 오랜 비행시간 동안도 묵묵히 걷는 그 시간도 호텔에 몸을 뉘였을 때의 나른함 속에서도 ‘나’를 생각할 수 있다. 일상 속에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 살아가다가 이제는 그 여행의 피곤함 속에서 ‘나’의 마음과 감정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소박한 꿈을 가슴 속에서 꺼내어서 하고 싶은 일, 꿈꾸는 일,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거나 써본다. 여행은 그러기에 참 좋다.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넓은 광장이나 다른 장소 노천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다. 한가롭게 커피를 마셨던 그 순간들이 여행을 다녀온 뒤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른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기에. 카페에서 메모를 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몇 시간을 즐긴다. 여행자에게 그 시간이 아까운 시간이 될 텐데 나에게 남는 건 그 시간이다. 그래서 은퇴 뒤에도 여행을 떠나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커피, 노트북, 책, 수첩 정도면 내 노후가 풍요로워 질 듯 하다. 내 여행은 내 노후준비이기도 하다.


여행의 모토는 <두 손은 가볍게 마음은 무겁게>이다. 치기 어린 시절에 짐을 잔뜩 챙기고, 면세품도 사서 미어터지는 캐리어에 또 꾸역꾸역 쑤셔넣고, 현지에서 쇼핑을 해서 서브 가방까지 채워서 오곤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뒤 나의 가치관이 <미니멀라이프>로 바뀌면서 여행도 미니멀하게 다녀오고 짐을 싸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떠난 유럽가족여행도 각자 기내용 캐리어 하나씩 싸서 출발했다. 예비용으로 접이식 보조가방을 들고 갔고 쇼핑한 것들은 거기에 넣어왔다. 겨울 여행 짐을 기내용으로 가져간다는 건 옷을 한 벌만 입겠다는 얘기인데 실제로 우리는 외투 한 벌만 입었다. 요즘은 여행을 사진찍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에게 내 사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패션은 이미 제껴 두었다. 짐이 단순해야 챙기다가 화도 안나고 잊어버리는 것도 덜 해서이다. 사실 현지 가면 다 있다. 내 취향에 딱 맞는 것이 필요한 경우에만 가져가고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현지 가서 편의점이나 드러그 스토어에서 구입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대부분 없이도 살 수 있다. 기내용 가방으로 가져가면 또 좋은 점은 가방을 가지고 기내를 바로 탈 수 있다. 셀프 체크인을 하여 짐을 부치는 시간을 아낄 수 있으며 가끔 내 짐이 안 나올까 하는 초조함을 덜 느낄 수 있다.

기념품이나 물건 쇼핑 역시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다. 기념품은 자석만 모은다. 예전에는 엽서까지 샀는데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가끔 스타벅스 컵을 산다. 이것도 아주 가끔이라 몇 개 뿐이다. 물건들의 질이 우리나라가 좋으며 요즘은 직구도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원하는 물건들을 왠만하면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다. 면세품도 거의 사지 않는다. 잘 계산해보면 최저가랑 비슷한 경우도 많아서 물건들을 들고 여행을 다닐 생각을 하면 시작부터 힘들다. 부피가 작고 여행 시작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구입하기 좋다고 생각한다.

난 겨울에 주로 여행을 한다. 가성비가 좋고 사람이 별로 없으며 벌레가 없고 땀냄새를 맡지 않아 좋다. 그리고 나의 일과도 관련이 있다. 12월이 되면 모든 에너지를 다 빨리고 내 몸이 가죽만 남는 느낌이 든다. 그 해가 힘들고 안 힘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12월이 되면 모든 교사들은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옛말에 <선생 똥은 개도 안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속에 쌓인 것 들이 몸으로 나타나서 그런 말이 나온 것 아니겠는가. 여름은 그래도 한 해의 중간이라 버틸만하다. 그러다가 12월이 끝날 때면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버티기로 들어간다. 12월은 할 일도 넘치고 학년 마무리를 해야 하기에 절대 아프면 안된다. 독감 주사도 맞고 집에 오면 영양제를 잔뜩 털어 넣는다. 몸이 좀 으슬하다 싶으면 쌍화탕과 타이레놀을 먹는다. 보건실에 얼굴을 빼꼼 내밀면 보건 선생님은 쌍화탕과 타이레놀을 주신다. 더 심한 날은 종합감기약까지 주신다. 털어 넣고 교실로 빠르게 향한다. 그렇게 그렇게 12월을 굳건히 버티다가 방학을 하고 나면 모든 기운이 다 소진되어서 몸과 마음이 물컹거린다.

겨울방학은 나를 쉰과 배움으로 충전하는 때다. 이 때 충분한 충전이 나의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래서 늘 겨울 여행이었던 같다. 한 해를 돌아보고 나의 다가오는 한 해를 준비하는 마음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아이를 낳으면서는 그런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엄마와 교사를 오고 가다가 가끔은 우리반 아이들에게 ‘엄마’가, 내 아이에게는 ‘선생님’이 라고 호칭을 바꿔 부른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너덜너덜 해갈 쯤 어느새 내 아이는 컸고 자기 짐 정도는 자기가 거뜬하게 챙기고 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여행이 다시 생각이 났다. 조금씩 ‘나’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추구하는 여행의 모습을 쓰다 보니 다시 여행이 떠나고 싶다. 여행하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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