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 개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아니다.
수학은 실 세계의 문제를 수학으로 표현하여, 그러니까 수와 기호로 표현하여 과학으로 해결하기 위해 배운다. 수학은 과학을 위한 언어이다.
책을 읽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컴퓨터와 대화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과학으로 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을 배운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려서부터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는 연습을 하며 수학을 배운다. 수학능력시험에는 세계 유수의 대학 수학과 학생들조차 어려워할 만큼 난해한 문제를 출제하고, 그 지옥 같은 난이도를 기어코 뚫어내며 만점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출제하고 풀어낼 정도의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대한민국 상표를 달고 나오는 독창적인 개념, 그러니까 이 세계를 관통하는 우리만의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도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과정을 끝까지 밟지 않았다. 그가 '대한민국 입시’라는 견고한 틀 안에서 정답을 맞히는 '풀이 기술'에 매몰되지 않아 다행이다.
범용인공지능시대(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를 준비하며 우리는 이제 수학교육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략은 철학적 기반 위에 선택과 실행을 조정해 가는 동적 예술이다. 수학교육을 전략적으로 풀어보면 이러하다.
우리의 수학교육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독립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에너지 주권, 데이터 주권 및 과학&기술패권 확보)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는 철학적 기반 위에 서야 한다. 이를 위해 수학을 단순한 문제 풀이 기술이 아닌 현실을 과학적으로 설계하기 위한 언어로 재 정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수학으로 표현하고(수와 기호를 사용하여 수학적 모델로 치환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교육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 이해관계자인 교육자와 학부모와 소통하고 내용을 보완하며, 예술적 경지에서 수학교육이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첫째, '답을 내는 기술'이 아닌 '현상을 번역하는 문해력'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껏 우리는 이미 수식으로 정리된 문제를 푸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수학은 노을이 지는 현상이나 데이터의 흐름을 보고 이를 수와 기호로 옮겨내는 '모델링(Modeling)'의 사유이다. 수학교육의 시작은 공식 암기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 세계를 추상화된 수학적 언어로 번역하는 '리터러시(Literacy)'의 훈련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본다.
원의 둘레와 넓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운다. 원에 대해 공부하는 교실을 상상해 본다.
교사 : 우리 학교에 '원'과 관련된 것을 찾아볼까요?
학생 1 : 시계요.
학생 2 : 놀이터 터널이요.(원통형 터널)
교사 : 좋아요. 그럼 선생님은 시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볼게요. 우리 반에 지름이 1m 인 시계를 달아야 해요. 그럼, 우리는 얼마만큼의 벽 면적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어디에 달면 좋을까요?
<아이들은 줄자를 벽에 대어보기도 하고, 종이에 원을 그리고 지름을 그어 1m라 표현하고 시계를 둘러싼 정사각형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면적을 찾고 나면 어디에 걸어야 좋을지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단순히 수치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효율과 인간의 편의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보기 좋은 위치, 선생님이 보기 좋은 위치 등 사람의 시선을 고려한다. 교사는 아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사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기 위한 질문들을 던진다.
더 나아가, 어떤 학생은 '도대체 지름이 1m인 시계가 우리한테 왜 필요하지? 너무 크잖아. 우리가 필요한 시계의 크기는 어느 정도면 좋을까? 나는 그걸 연구해 봐야겠어. 1m의 시계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아.'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우뚝 서기도 한다.>
교사 : 자, 이제 우리 시계의 위치를 정했네요. 두 번째 문제는 놀이터의 원통형 터널을 가지고 여러분이 제안해 보세요.
학생 1 : 터널을 만드는데 휘어지는 철판이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학생 2 : 터널에 몸이 끼는 친구들도 있어요. 터널의 지름을 얼마로 해야 모두가 통과할 수 있을까요?
교사 : 좋아요. 우리 철판이 얼마나 들어가 있을지에 대해 연구해 보기로 해요. 시작하죠.
< 아이들은 줄자를 들고 놀이터로 나가 터널 입구의 지름과 터널의 길이를 측정한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몸 둘레를 측정하고 원통 안에 들어가서 자신이 채우지 못한 여유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원'의 개념을 넘어 '원기둥'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
이 교실에서 아이들은 공식을 외우지 않았다. 대신 시계를 통해 '원의 면적'이라는 개념이 내 삶의 공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놀이터의 원형 터널에서 '원기둥의 겉넓이'가 산업의 재료인 철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체험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수학과 실 세계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둘째, '3학(Trivium)'의 사유 체계를 수학교육에 복원해야 한다. 트리비움의 어원은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곳'이다. 왜 길일까? 문법(Grammar)은 세상을 읽는 길, 논리학(Logic)은 생각의 길, 수사학(Rhetoric)은 소통과 설득의 길이 아닐까?
중세 대학이 전문 교육 전 2년간 문법(Grammar), 논리학(Logic), 수사학(Rhetoric)에 매진했던 것처럼, 수학 역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Logic) 이를 체계적으로 표현하는(Rhetoric) 사유의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학에서의 문법(Grammar)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의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기호와 숫자의 의미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는 '기초 문해력'이다. 현실의 문제를 수학적 기호와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로 접근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현실 세계의 문제를 구조화하고 잘게 쪼개서 가장 아래에 숨어 있는 요소인 숫자를 찾고 그 숫자와 알 수 없는 변수들의 관계를 기호로 표현하는 일이다. 철학에서 개념을 세우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다음, 논리(Logic)는 생각을 구조적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과관계를 만드는 과정으로 수학에서의 논리는 현실에서 출발해서 수학적 공식, 정리, 정의 등에 이르는 논리적 추론을 의미한다. 거꾸로, 공식을 증명하고 정답에 이르는 추론도 있다. 이 힘은 AI가 내놓은 답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검증하는 'AI리터러시', 비판적 문해력의 기반이 된다.
마지막, 수사학(Rhetoric)은 문법으로 정의하고 논리로 추론한 내용을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단계이다. 앞서 살펴본 교실에서 한 아이가 시계를 걸 위치를 정하고 그 결과와 과정을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 필요한 능력이다. 수학에서의 수사학은, 수학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리는 '표현의 기술'이다. 현실의 문제를 수학으로 표현하여 과학으로 해결하는 데 있어 우리는 사람 혹은 AI와 대화해야 한다. 수사학은 이 대화를 잘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우리는 이 능력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만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되어 실제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입을 닫고 있기도 하고, '나서는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입을 닫기도 한다.
말을 제대로 잘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자신의 연구내용을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기업에서 그러한 경우를 경험했다. 실무를 참 잘하는 사람인데, 자신이 한 일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 일을 알리고 전파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이다. 실행한 사람이 직접 전달하면 좋은데, 그 일을 직접 하지 않고 자료 잘 만들고 말 잘하는 사람이 대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프레젠테이션 끝에 질의응답 시간이 오면, 드디어 그 일의 주인이 나와서 대답을 하는데 답변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표현을 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키워서 발전시켜 갈 수 있다. 그 대화의 대상이 AI든 사람이든.
수학교육혁신은 아이들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이 세계의 <결>을 읽고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가로 키워내는 일과 닿아 있다. 교육은 정해진 지식을 암기해서 문제를 풀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나와 이 세계에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덤비는 용기를 키우기 위해 필요하다. 교육은 나 자신에 집중하여 나를 사랑하고 더 나은 나, 내가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해 꿈꾸고 실행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힘은 인류가 인류공동체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이어갈 수 있는 힘으로 모아질 것이다.
수학은 눈에 보이는 세계도, 보이지 않는 세계도 과학이 닿을 수 있도록 이어주는 언어이다. 인간의 심연이 철학에 닿는다면 과학과 기술의 심연은 수학에 닿는다. 이 수학의 심연도 철학에 닿는다. 이런 수학교육의 혁신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교육혁신의 물결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여고시절 별명은 '정석녀'였다. 실력정석을 끼고 다니고 베고 자기도 했다. 어떤 문제를 몇 시간씩 붙들고 고민하는 그 과정이 좋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입시에 그런 능력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학만큼 국어를 좋아했다. 시인을 꿈꿨고, 전혜린의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를 읽으며 서른이 되면 삶을 마감하겠다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나는 혹시 누군가에게 주인공 같은 존재가 아닌지,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곤충처럼 대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했다.
대한민국 교육은 국어와 수학을 좋아하는 여고생에게 이과와 문과 중 하나를 택하게 했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를 원했는데도 말이다. 나와 아버지는 문과를, 학교와 어머니는 이과를 주장했다. 지난한 싸움 끝에 나는 학교입장에서 대학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는 이과 교실 한 구석에 앉아 최승자의 '기억의 집’을 끼고 낙서를 했다. 더 이상 수학도 재미있지 않았다.
이제 문과, 이과의 구분이 사라졌다. 다행이다.
그런데, 국어를 왜 배우는가? 나와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읽고 나의 글을 쓰기 위해 배우는가?
수학을 왜 배우는가? 현실의 문제를 수학으로 표현하여 과학으로 해결하기 위해 배우는가? 논리적 사고를 위해 배우는가?
글쓴이 정원 | 전략연구소<결> 독립연구자 | 전략 자문 | "사유와 실천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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