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보이는 현상, 기술이 흐름인가, 작은 물결인가 아니면 파도인가?
2010년의 어느 날, 대표이사께서 클라우드(Cloud)에 대해 물으셨다.
당시, 나는 10년 차 책임(과장)으로 IT기획을 담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나의 로드맵상 9년간 운영 실무와 각종 프로젝트를 충분히 경험한 뒤, 10년 차쯤 되면 '기획'에 도전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잘 알고 계셨던 그룹장께서 "이제, 기획해야지? 네 로드맵상으로도 이제 때가 되었으니." 하며 업무를 바꿔주셨다. 그룹장께서는 내가 신입사원 시절부터 비전과 로드맵을 수립하고 매년 업데이트하며 필요한 역량들을 채워왔음을 지켜봐 주신 선배님이기에 가능했다.
IT기획 담당자인 나는, 그룹장과 CIO(Chief Information Officer, 최고정보책임자)를 거쳐 대표이사께 바로 보고가 될 리포트를 쓰기 시작했다. 정보전략인인 나는 어떤 기술이나 서비스를 만날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세계의 흐름인가?' 다음은 '주류(main stream)인가?'. 그러니까 <결>인지, 점점 커져 파도를 일으킬 큰 물<결>인지 살핀다. 클라우드는 아마존의 AWS(Amazon Web Service)로 알려졌다. AWS는 2006년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0년 당시에는 글로벌하게 검증이 되어 성장기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각종 신문에도 구름 이미지와 함께 소개가 되었다. 대표이사께서도 신문의 기사를 보고 CIO께 전화를 하셨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이 세계의 흐름이었고 큰 물결이 되리라 생각했다. 스마트워크플레이스(Smart Workplace)를 꿈꾸던 우리는(정보전략인) 임직원이 어느 사업장, 어느 법인을 가더라도 자신이 하던 일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료뿐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자체가 클라우드 위에 올라가 있어야 했다. 문제는 '보안'과 '주권'이었다. '우리의 데이터에 대한 보안이 유지될 것인가?', '우리 데이터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는가?' 당시, 대한민국의 IT기업들도 클라우드 인프라를 갖추고 사업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기술은 외산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었다. 해서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스마트워크플레이스를 구축해 가면서도 클라우드 관련 동향을 살펴갔다.
보고서를 어떻게 썼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와, 등 뒤의 부장님들께서 적용할 수 있는 영역과 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며 토론하는 소리를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보고서의 단어 하나 조사 하나까지 집중하던 그 상황만 그림처럼 남아있다.
GPT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던 어느 학습 공동체의 커리큘럼에 '블록체인'이 있었다. 그 안에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저는 블록체인을 배웠지만, 다음 기수부터는 AI(인공지능)을 배우는 것이 좋겠어요."
당시의 나는, 블록체인이 이 세계의 흐름이기는 하나 주류(main stream)로 보지는 않았다. AI는 큰 물결을 일으킬 것이고, 우리가 준비하지 않으면 그 파도에 휩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블록체인은 특정 영역, 특히 금융권에서 훌륭한 도구가 되겠지만 주류로 보이지는 않았다.
블록체인이 담고 있는 철학, 즉 '탈중앙화'와 '디지털 주권'에는 깊이 공감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변화인 DX(디지털 전환, Digital Transformation)와 AX(AI전환, AI Transformation)를 향하고 있었다. 내게 블록체인은 DX와 AX로 가는 여정에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유용한 기술로 보였다.
이제 디지털 영역을 벗어나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추락하는 출산율, 늘어가는 중고등학교 자퇴생, 선택이 된 결혼. 이런 현상들은 일시적인가? 아니면 이 세계의 흐름인가? 잔잔한 물결인가, 아니면 머지않아 우리를 집어삼킬 거대한 파도가 될 것인가?
나는 흐름으로 본다. 이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트는 시도를 해야 한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보며 '북한은 침공할 필요 없이 그저 걸어 내려오기만 하면 될 것'이라 했다.
잠시, 일론 머스크의 워딩을 살펴보자.
"If you look at South Korea’s replacement rate, their population will shrink to 1/27th of its current size in just three generations. It will be only about 3% of what it is today." (한국의 인구는 3세대 만에 현재의 3% 수준만 남게 될 것이다.) > 이 말은 약 90년 뒤인 2110년경, 대한민국의 인구가 188만 명 수준이 된다는 뜻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인구(약 237만 명) 보다 작고 적고, 충청북도 전체 인구(약 160만 명)를 겨우 상회하는 숫자이다.
"At that point, North Korea doesn’t even need to invade. They can just walk in. There will be no one left to stop them." (그때가 되면 북한은 침공할 필요도 없다. 걸어 내려오면 된다.)
나는 20대 아들과 10대 딸을 두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결혼을 원한다. 그런데, 나의 손자 손녀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우리가 이대로, 그냥 둔다면 말이다.
이 흐름이 파도가 되어 우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2006년부터 2025년까지 저출산 대응에 투입된 예산은 약 280조~300조 원에 달한다. 저출산과 맞물려 있는 고령화 대책까지 포함하면 약 385조 원이다. 2026년 올해 예산은 70.4조 원이 편성되어 있다. 전체 예산의 약 10%를 차지하며, 나라를 지키는 국방 예산(65~67조 규모) 보다 많다.
출산율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보자.
본 차트는 통계청 인구동향조사(KOSIS) 및 UN인구기금(UNFPA), 세계은행(World Bank) 오픈데이터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통계를 기반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재구성하였습니다. 시계열 분석의 명확성을 위해 약 20년 주기의 주요 변곡점을 데이터 포인트로 설정하여 추세를 연결하였음을 밝힙니다.
어떻게 흘러왔나? 우리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흐름이 하락의 <결>을 그리고 있다. 대체출산율 2.1명은 한 국가의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1980년대 초, 북한과 우리의 그래프가 교차되던 그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당시의 우리는, 저출산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폭발'을 막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둘도 많다,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새 천년을 맞은 2000년, 그나마 그래프의 기울기가 완만할 때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노무현 정부가 되어서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대책을 시행했으나 그 효과가 어떠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이 그래프를 바라본다.
우리가, 인구가 줄어들어도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저출산 대책에 쓴 그 수조 원의 자금을 말이다.
AI특구를 조성해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가 몰려드는 환경을 만들고 자연스러운 인구 유입을 유도했다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SMR(소형모듈원전)등 차세대 에너지 확보에 투자하여, 세계가 우리의 기술과 인프라에 주목하게 했다면? 로봇에 투자하여 최전방을 로봇이 지키는 시대를 앞당겼다면?
교육에 투자하여 선생님 한 명이 학생 한 명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환경, 학생 개개인의 학습 로드맵을 구축하고 스스로 AI학습비서의 도움을 받아 지식의 깊이를 더해가는 그런 교실을 만들었다면?
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저 성적을 위한 투쟁과 고통이었다면, 그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싶을까?
대한민국은 출산율에 대해, 골든타임을 모두 놓쳤다. 저 그래프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고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클라우드, 블록체인을 이야기하다 출산율까지 왔다. 핵심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혹은 어떤 문제가, 어떤 기술이나 서비스가 이 세계의 흐름인지 아닌지 깊이 사유해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잔잔한 물결인지, 아니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이 세계를 집어삼킬 만한 것인지 분별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전략에 관심을 두고 전략연구소를 만들고, 그 이름을 <결>이라 지은 이유이다.
대한민국은 20년 경력이든, 30년 경력이든 박사 학위가 없으면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 전략 전문가이나 실무 경험이 많다 보니 구멍 난 영역을 메우고 있으면, 다른 일은 할 줄 몰라 그 일을 하는 줄 알고 주구장창 그 일을 시키기도 한다. 구멍을 메우러 들어갔다 그 안에 매몰되기도 했다. 리더에게 전략이, 거버넌스가 중요했다면 나를 끄집어내어 그 일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들 전략이 중요하다고 한다.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전략이 무엇인가? 거버넌스가 무엇인가?
내가 정의하는 전략은 '철학적 기반 위에 선택과 실행을 조정해 가는 동적 예술'이다. 내가 이해하는 전략과 거버넌스는 이러하다. 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의한다면, 거버넌스는 그 전략을 누가, 어떤 근거로, 어떻게 결정하고 책임질 것인가를 규정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체계, 역할과 책임(Role & Responsibility)등이 포함된다. 이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정의되는 물리적실체가 아키텍처이다.
IT전략-IT거버넌스-IT아키텍처를 기획•운영•관리하며 배운것에서 IT를 제외하고 보면 이러하다.
거버넌스가 튼튼해야 전략이 잘 실행되고 아키텍처가 잘 구성될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바뀌어도 시스템이 유지되고, 조직의 유전자가 보존될 수 있다. 이는, 죽어있는 매뉴얼과 살아있는 체계의 차이다. 새로운 전략을 수행하려는데 거버넌스에 정의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거버넌스를 먼저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래야 실행자가 바뀌어도 그 철학이 이어질 수 있다.
수많은 리더들이 전략과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그들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으며, 무엇이라 이해하고 있는가?
전략을 수립하고 거버넌스를 구축해 운영하며, 끊임없이 점검하고 보완하는 그 치열하고도 '살아있는 과정'을 단 한 번이라도 온몸으로 겪어보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거창한 기업에서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스스로를 통제할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실행하며 성장해 보았는가?
그래서 진심으로 그것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관성적으로 내뱉는 수사(Rhetoric)에 불과한 것인가? 스스로 리더라 생각하는 분들께 묻고 싶다.
IT거버넌스를 정의하고 전략을 수립해서 실행하며,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때가 있다. 선배들이 만들어온 그 체계가 동적으로 움직이며 발전해 가도록 할 책임이 있었다. 당시 조직의 방향을 흔들려던 결정권자 앞에서 나는 이런 생각으로 버텼다. '당신은 왔다 가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우리는 이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내가 견디는 것이다.' 어느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도 했다. 영혼이 병들어갔다. 그리고 암에 걸렸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도, 나는 왜 그랬을까? 그렇게 정보전략을 지키고 있다 보면 제대로 된 CIO가 왔을 때, 다시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나는 병을 얻어 회사를 떠났다.
전략과 거버넌스가 진심으로 중요한가? 그렇다.
이 중요한 일을 잘하기 위해 이 세계의 <결>을 살펴야 한다.
글쓴이 정원 | 전략연구소<결> 독립연구자 | 전략 자문 | "사유와 실천의 물결"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당신께, 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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