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앤트로픽 사태와 조선의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살펴보는 철학의 중요성
나는 ‘기업 AI 아키텍처'에서 아키텍처의 위계 체계를 설명했다. AI 철학 아래 AI 전략과 AI 거버넌스를 배치시키며, AI 철학의 사례로 바이든 정부의 기술 발전보다 '민주적 가치 수호'를 상위에 둔 AI 행정명령을 들었다. 현 정부의 것을 사례로 들지 않은 이유는 현재의 "AI 패권(AI to win)" 기조가 자칫 국가 발전을 위한 기술 만능주의로 흘러, 사람보다 기술의 효용을 우위에 둘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국가 안보 강화라는 전략 아래에 기업의 거버넌스가 정렬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앤트로픽을 포함한 AI기업에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사용된 데이터의 출처·성격과 모델의 두뇌에 해당하는 핵심 기술 정보(기업의 영업비밀),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이 미국의 클라우드 자원을 사용하여 AI를 개발하려 할 때 그 신원을 정부에 보고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들을 할 수 있는 거버넌스 위에는 "AI 패권"이라는 AI철학이 있다.
앤트로픽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국가로부터 독립적이고 안전한 거버넌스를 지키려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의 공존이며, 정부가 AI 가이드라인을 독점적으로 설계한다면 AI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답변만 내어놓을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이 AI를 통해 확장하고자 하는 '사유 주권'을 국가가 사전에 검열하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된다.
앤트로픽은 "헌법적 AI(Constitutional AI, CAI)"를 추구한다. AI 시스템을 인간의 가치와 일치시키고 유용하고 무해하며 정직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개발된 프레임워크이다. 이 지점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앤트로픽의 헌법적 AI와 국가가 내린 명령의 충돌이며, 이는 앤트로픽의 AI철학과 국가 AI철학의 충돌이다.
미 정부는 앤트로픽을 극좌(Radical Left) AI 기업이라 비난하며, 모든 연방 기관에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즉시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으로 지정했는데, 이는 보통 적대국 기업(화웨이 등)에 내리는 조치이다.
자신들이 세운 AI 헌법을 지키기 위해 국가 권력과의 결별을 택한 앤트로픽의 행보를 보며, "외부의 거대한 힘이 나의 신념과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그 해답은 '철학'일 것이다. '철학~전략~거버넌스'로 이어져 내려오는 의사결정의 기준 말이다.
아무리 좋은 전략과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철학이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막을 수 있는 것이라면?
200여 년 전, 조선의 한 지식인이 내렸던 뼈아픈 선택이 떠오른다.
*천주교가 동양에 전파될 때, 청은 천주교 사제들의 천문학과 수학 능력을 높이 사면서 달력과 천체를 다루는 관직을 준다. 청은 종교로서의 '천주교'와 학문으로서의 '서학'을 구분하여 '서학'은 받아들였다. 그런데, 청나라도 받아들인 서학을 조선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주자학은 '정답'이었다. 정답이 정해진 세상에 다른 답을 허용하려 하니, 그저 틀린 것이 아니라 '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서학의 평등사상과 과학적 합리성은 조선의 신분제와 명분론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조는 왜 서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정조의 사유나 행보로 볼 때, 학문만큼은 받아들일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내가 정조를 너무 진보적으로 생각했거나, 아니면 실제 정조는 진보적이었는데 자신의 불안한 입지를 지키기 위해 나설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정조는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박해를 하지도 않았다. 정조 서거 후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고 황사영 백서사건이 벌어진다.
정조 24년인 1800년, 정조 서거 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며 천주교 세력을 탄압한다. 1801년 황사영은 충청도 배론 성지의 토굴에 숨어, 청나라 경사(연경, 현재의 베이징)의 주교에 신앙의 자유를 위해 서양군함을 이끌어 조선을 압박해 달라고 요청하는 백서를 쓴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명백한 반역이지만, 당시의 맥락에서 보면 조선 거버넌스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황사영은 천주교를 받아들여 나라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조선이 주자성리학으로 고려를 허물고 새롭게 시작했듯.
백서는 발각되어 청에 전해지지 못했고, 황사영은 대역죄로 다스려져 능지처참 형을 당했다. 기존의 조선 지배 철학(성리학)이 새로운 사유(천주교, 서학)를 거부하고 지워냈다.
당시 중국은(청) 서학을 받아들여 기술을 발전시켰다. 교황청이 조상의 제사를 금지하면서 청 역시 천주교 포교를 금지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선교사들의 과학적 재능은 활용되고 있었기에 황사영이 연경의 주교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통로가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에도 막부) 조선이나 청나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학을 일본화했다. 포교를 목적으로 한 스페인·포르투갈은 배척했지만, 상업적 목적의 네덜란드에는 문을 열고 난학(네덜란드 학문)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종교는 거부했으나 의학·천문학 등 실용적 기술을 흡수했다. 황사영이 백서를 쓰기 약 30년 전인 1774년(영조 50년), 일본은 이미 서양 의학서인 <해체신서>를 번역해 출판했다.
우리는 왜 서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에 뒤쳐지게 되었을까? 우리의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정도전이 고려 말 설계했듯, 성리학을 조선화 하여 받아들였다면 달라졌겠으나 우리는 맹목적으로 성리학 서적의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시 중국은 '실사구시', 일본은 '고학과 국학'이라는 지배철학(Ruling Philosophy)을 가지고 나라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실사구시 : 실제 사실에서 진리를 찾으며 현실 세계에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켰다.
고학 : 성리학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유교의 원전인 공자와 맹자의 시대로 직접 돌아가 탐구했다. 주자의 주석을 걷어내니 '개인의 수양(도덕)'에 집착했던 성리학이 무너지며 '세상을 다스리는 실질적 기술'이 강조될 수 있었다.
국학 : 일본의 뿌리에서 정체성을 찾자는 '일본 고유의 정신'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이 때 '주체적 수용'이 시작되어 훗날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의 기업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정부가 기업의 철학에 반하는 정보를 요구한다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될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정부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국가를 위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결정이 필요하다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될 민주주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자유', 중국은 '대동', 영국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1. 미국의 자유
다수가 원하더라도 개인이 태어나면서 얻은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우선시됨
사례 : 2016년 FBI는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을 해제하라고 애플에 명령했고 여론 역시 정부를 지지했으나, 애플은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며 끝까지 거부했고 미 법원 역시 정부의 강제 명령을 철회함
2. 중국의 대동
집단의 번영과 안정이 민주적 절차보다 우선된다는 결과중심의 정당성을 가짐
사례: 2020년 이후 중국은 거대 IT기업(알리바바 등)의 독점을 규제하고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 특정 기업의 성장이 사회적 격차를 벌린다면 민주적 시장 경제 논리를 뒤로하고 국가가 개입하여 대동의 질서를 바로잡음
3. 영국의 전통
성문 헌법보다 무서운 관습법과 축적된 경험이 우선시됨
사례 : 2016년 영국은 EU탈퇴를 결정, 영국의 민주주의가 단순히 '다수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된 시스템에 대한 전통, 신뢰, 자부심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 드러난 사례
중국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이고 미국과 영국의 사례 역시 그에 반하는 사례들도 많기에 자유, 대동, 전통이 국가 지배철학의 가장 상위에 있다고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반하는 결정이 필요할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철학임에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전략연구소<결>은 전략적 개인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결>이 진단하는 이 세계의 문제는 ‘기술이 인간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을 향하며 연구된 이론이 기술과 서비스로 이 세계에 적용될 때,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이 개인의 삶보다 우선시되는 흐름을 문제로 본다. 기술이 인간을 향하도록 흐름을 바꾸고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다.
<결>은 개인에 집중한다. 개인이 가진 고유한 결을 찾고 발전시키며, 그런 개인들이 모여 사유와 실천으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연구실 하위 조직을 교육혁신팀, 자기혁신팀, 국가혁신팀, 디지털 <결> 연구팀으로 구성했다.
자기 삶의 철학을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개인을 길러내고, 그러한 개인이 호기심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자기혁신을 이어가며, 이러한 개인이 잘 살 수 있는 국가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기술과 디지털 인류학을 연구한다.
그래서 <결>의 AI철학은 인간의 사유 주권을 지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연구소가 생성하는 모든 결과물의 5대 가치(진실, 호기심, 아름다움, 생명 존중, 사유 주권)를 점검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철학자도 인류학자도 AI 전문가도 아닌 한 개인이 하기 어려운 일이며, 영향력 없는 내가 시도한들 변화가 일어날까 싶은 일이다. AI라면 확률적으로 가능성 없는 이 일에 도전하지 않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도전한다. 인간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 있다. 이 모든 선택과 실행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이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이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향하게 한다."
전략연구소<결>의 철학이자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며 <결>의 전략, 거버넌스, 아키텍처가 정열(Alignment) 해야 할 기준이다.
우리 기업의 철학은, 대한민국의 철학은 무엇인가?
*출처 : 함재봉, 『한국 사람 만들기 1: 조선 사람 만들기(친중 위정척사파)』, H프레스, 2020, 339~348쪽
글쓴이 정원 | 전략연구소<결> 독립연구자 | 전략 자문 | "사유와 실천의 물결"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당신께, 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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