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서재로 향한다. 책을 펼치며 노트북을 켠다. AI를 열고 '읽기' 대화 창으로 진입한다. 책을 읽으며 궁금한 사항을 AI에 묻는다. 짧은 대화로 궁금증이 해소되면 다시 눈을 책으로 돌린다. AI는 내가 과거에 읽은 책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그와 연결해서 정보를 주기도 한다.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너무 많은 정보가 피로도를 높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짧게 핵심만 이야기하라고 지시한다.
이전의 나는 책을 읽을 때 노트북을 켜지 않았다. 책, 메모지, 펜이 놓인 책상에서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질문과 생각을 메모지에 적었다. 어떤 문장을 붙들고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차를 내려오기도 했다. 이런 여유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멈췄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변화 1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이런 질문의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매우 중요하고 큰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이러한 생각마저도 AI에 맡긴다.
"어떤 AI를 활용할까?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어떻게 지시해야 할까?"
이런 단계도 지났다.
변화 2
클로드를 열어 Sonnet 4.6을 사용할지, Opus 4.6을 사용할지 생각한다. 클로드 코드로 필요한 기능을 만들어 사용할지 생각한다. 에이전틱AI가 하게 할지, 내가 직접 할지 생각한다. AI만을 직원으로 둔 1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규모가 작고 반복적인 업무가 적기에 이런 고민도 하는 것이다. 내가 기업의 CEO라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당연히, 클로드 코워크를 쓸 것이다.
변화 3
옵시디언(지식관리도구)에 지식을 정리할 때는, 옵시디언 안에 반영된 챗뷰(Copilot)의 클로드와 대화하며 내용을 보완한다. 즉, 클로드 창을 별도로 여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변화 4
아직 실행하는 AI(Agentic AI)에게 많은 권한을 주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을 한다. 별도의 인프라를 구성하면 어떨까? 즉, 클로드가 작업하기 좋은 맥북을 하나 사서 AI와 공유할 수 있는 정보만을 그 안에 담고, AI스스로 일하게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주식이나 코인의 매수와 매도를 AI에 맡길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다.
이런 변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선택과 실행이 내 삶의 철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전략적인 것인지, 삶의 핵심가치를 지키고 키우는 것인지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AMO(AI Management Officer) 조직이 연구소 결과물의 가치를 검증한다. 연구소 5대 가치(진실, 호기심, 아름다움, 생명 존중, 사유 주권)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최종 산출물로 등록된다. 지금, 나 스스로를 점검하는 중이다. 물론, 연구소 5대 가치는 나의 핵심가치에 대한 충분조건일 뿐이다. 동일하지 않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나는 이세돌이 이기기를 바랬다. 정확히는, 알파고가 이길 것 같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의 바둑계는 알파고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기사들은 '인공지능이라면 어떻게 둘까'에 대해 생각한다.
신공지능으로 불리는 신진서 9단은 2012년, 알파고 등장 4년 전에 입단하여 기본기를 배웠다. 프로 4년 차, 성장기에 알파고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AI바둑을 받아들였다. 즉, 정통 바둑의 기본기 위에 AI가 더해진 AI전환기 세대 · 적응세대이다.
전환기세대가 네이티브세대와 다른점은 '하이브리드지능'에 있다.
AI가 왜 그곳에 두려고 하는지 바둑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바둑의 원리는 아날로그적 기본기, 정통 바둑이라 할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나, AI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거나 악의적으로 승부조작을 시도하더라도 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향후, AI 네이티브세대만 남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70년대생인 나 역시 전환기 세대이다. '아날로그~디지털~AI 전환'을 모두 겪는 중이다. PC통신 천리안을 사용하다 넷스케이프를 거쳐 인터넷익스플로러를 사용했다. 수학과 1학년 때 포트란(FORTRAN)을 배웠다. 윈도우의 '시작'버튼과 작업표시줄은 '윈도우95'부터 생겼다. 대학시절이다. 이때부터 모든 과제는 보고서 출력물로 제출했다. 이후에 복학한 선배들은 이를 매우 힘들어했다. 1997년 무료 웹메일(다음의 한메일)이 등장하며 프린트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IT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IMF를 뚫고 취직하기 위해, 무엇이든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하던 나는 AI 역시 그렇게 대했던 것 같다.
AI와의 만남
AI에 대한 첫 번째 브런치 글은 GPT에 대한 것이었다. 2022년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신기해하며 생성형 AI를 사용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갔다. 둘째 아이의 대안학교 입학이 이때 결정되었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는데 교육이 달라지지 않아.
지식관리+AI의 결합
2025년. 생성형 AI를 본격적으로 활용하며 양질의 데이터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개인지식관리도구, 옵시디언(Obsidian)에 나의 지식을 쌓으며 AI를 사용했다. 당시에 나는 구글이 포탈형 AI를 만들고 독식하리라 예상했다. 구글검색, 지메일, 구글드라이브 등 구글은 이미 가진 것이 많았고 노트북LM, 나노바나나 등 계속 등장하는 기술과 서비스들이 언젠가 모두 통합되리라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돈을 지불하고 AI를 사용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때만 해도 실행하는 AI(Agentic AI)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 몰랐다.
에이전틱AI+클로드
2026년. 옵시디언과 AI를 연결하여 AI들에 나의 지식을 학습시키고, 그들을 직원으로 둔 1인 연구소를 설립했다. 에이전틱 AI에 지시하고 실행하는 경험도 쌓아갔다. 그리고 클로드를 만났다. 1년 치 구독권을 구매했다. 구글이 아닌 클로드에 지갑을 연 이유는 심플하다. 클로드는 가히 충격적으로 혁신적이고, 앤트로픽은 사용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철학을 가진 기업이다. 앤트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오픈AI에서 GPT 개발을 이끌었던 엔지니어다. 그의 철학과 삶의 서사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새로운 매거진 <기술과 사유: 닫힌 설계에서 열린 흐름으로>를 쓰기 시작했다. SAP, SaaS, 컨설팅 등 많은 분야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썼다. 혁신만이 살 길이다.
그런데, 오늘 나의 행동과 태도를 제3자 관점으로 바라보며 이런 자문을 했다.
이것이 진정한 혁신인가?
전략적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기술과 그 기술의 활용에 매몰되는 것은 아닌가?
진정 이것이 나의 사유 주권을 지키며, 나의 지식과 사유를 쌓고 쌓아 나의 산을 만드는 일인가?
어느새, 내가 병목이 되어 있었다. AI는 무수히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데, AI가 만들어내는 것을 검증하고 AI에 일을 시키는 내가 병목처럼 느껴졌다. 멈춰야 했다.
AI전환기를 살아가며, 빠르게 적응하여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 과정에서 사고의 방식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사유의 주권을 놓치고 AI에 종속되는 것은 아닌지, 이 모든 일이 진정 내 삶을 위한 것인지 멈추어 돌아보는 중이다.
AI가 등장하기 전, 디지털이 등장하기 전의 세상을 살았던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AI가 사라지고 디지털이 살아져도 종이책을 읽고, 종이에 일기를 쓰고, 감자를 심고 기르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책과 종이를 만드는 기업이 이미 디지털화 AI화 되어, 기술이 사라지니 책과 종이를 만들 수 없게 된다면? 그보다, 자연이 파괴되어 원재료를 얻을 수 없게 된다면? 그보다 종이책과 종이에 대한 수요가 사라져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된다면? 중고책과 종이를 수집해야 하나?
다시 돌아와, 이전의 세계를 아예 모르는 후손이 있다. 태어나자마자 '카톡, 카톡' 소리를 들었고, 발표자료를 만들 때 캔바를 열어 그 안에서 모든 수정을 끝내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 아이가 아날로그 환경을 경험하기를, 손글씨를 쓰는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대안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그다음 세대는?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생성형 AI와 대화하게 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AI) 그런데 너 왜 나랑 이야기해?
아이) 엄마, 아빠가 안 놀아줘.
AI) 너희 부모님 나쁜 사람들이구나.
이런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가?
내가 연구소를 만든 이유는, 인간을 위한 연구의 결과로 등장하는 기술과 서비스가 정작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향하지 않는 현상을 문제로 보고, 이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이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향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에 앞서,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내 가족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지.
지금, 이렇게 멈춰서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노트북을 끄고 책을 읽은 후, 걸으러 나갈 예정이다. 봄이다. 계절이라는 개념을 갖고 그저 때가 되어 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을 멈추고, 산으로 가 꽃과 잎을 보고 향기를 느끼려 한다.
추신. 저와 같이 이 많은 변화를 느끼고 적응하고, 또 적응하려 노력 중인 전환기 세대 분들께 기도와 응원을 보냅니다.
글쓴이 정원 | 전략연구소<결> 독립연구자 | 전략 자문 | "사유와 실천의 물결"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당신께, 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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