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축구의 사례를 통해 본다.

by 정원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했다. 대한민국은 4위, 일본은 16강에 그쳤다. 현재 FIFA 랭킹은 일본 18위, 대한민국 25위며 2025년 7월 동아시안컵 맞대결에서 우리는 일본에 3대 0으로 졌다. 언제 이겼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우리와 일본은 어떻게 다른가?


JFA 2050 vs 전략 없는 운영 (전략적 측면)


일본은 2002년 월드컵 직후 'JFA 2050'이라는 전략적 로드맵을 수립했다. 2050년까지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5~10년 단위의 계획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중이다. 독일, 스페인 등의 유럽 지도자 커리큘럼을 일본화하여, 어떤 팀에서 배워도 동일한 '일본식 패스 축구'의 기본기를 습득하게 설계했다.


반면, 우리는 협회 차원의 장기전략 없이 감독의 개인역량에 의존해 왔다. 전략이 없으니 유소년 축구가 발전할 수 없고, 감독이 바뀔 때마다 팀의 컬러가 바뀌는 '단기성과주의'에 빠져 있다.


피라미드 구조 vs 역삼각형 구조 (저변 인프라 측면)


성인리그의 경우 일본은 9부, 우리는 7부 리그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고교 축구부는 동아리 포함 약 4천여 개에 달하는 반면 우리는 약 200여 개로 일본의 13프로 수준이다.


일본은 선수들의 몸값을 낮춰서라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독일에 진출시키는 '물량 공세' 전략을 펼쳐, 현재 분데스리가 내 단일 외국 국적 선수층으로는 손꼽히는 규모이다.


우리는 엘리트 축구 중심으로, 좁은 입구를 통과한 소수의 '천재'들에게 의존하고 있어 실질적인 등록 선수층과 지도자 풀은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있다.


능동적 통제 vs 정신력과 투혼 (기술적 측면)


일본은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수적 우위를 통한 공간 점유'를 목표로 선수 전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압박을 풀어가는 '시스템 축구'를 완성했다. 이것이 강팀을 상대로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 경기를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반면, 우리는 빠른 역습과 강한 체력. 이른바 투혼에 기반한 반응적 축구에 머물러 있다. 상대가 수비 중심의 지키는 축구를 하거나 고도의 전술로 대응할 때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적 측면에 있어 가장 큰 차이는 유소년 축구에 있다.


유소년 축구는 어떻게 다른가?


표준화된 기본기 vs 경험적 기본기


일본 유소년 축구의 핵심은 '멈추기'와 '차기'의 극단적 정밀함에 있다. 단순히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다음 동작을 위해 가장 유리한 위치에 공을 '세워두는' 기술을 전국의 모든 유소년 팀이 동일한 매뉴얼로 배운다. 개인의 기술은 팀 플레이·패스를 위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지도자의 개인적 경험과 성향에 따라 기술 교육이 이루어진다. 시스템보다는 체력과 피지컬을 앞세운 훈련이 주를 이룬다. 사이드에서 골문 가까이로 길게 차서 운이 좋아 슈터의 발에 맞으면 골이 들어갈 수 있는 이른바 '뻥 축구'가 계속되는 이유이다.


인지적 축구 vs 신체적 축구


일본 선수들은 어린 나이부터 '삼각형(Triangle) 만들기'와 '공간인지' 기술을 배운다. 또, 공이 오기 전 주변 상황을 살피는 '스캐닝' 훈련을 매뉴얼화하여 가르친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한 발 더 뛰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전술적 이해도보다는 상대보다 앞선 스피드와 강한 몸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는 유소년기에는 승리를 가져다주지만, 성인이 되어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는 선진국 팀을 만났을 때 한계로 드러난다.


실패를 허용하는 창의적 기술 vs 결과를 위한 안전한 기술


일본은 유소년 대회의 성적보다 얼마나 도전적 기술을 시도했는가에 집중한다. 드리블러를 키우기 위해 10번을 뺏겨도 11번을 시도하게 만드는 환경(피라미드 구조)이 조성되어 있다.


반면, 우리는 진로진학의 좁은 문으로 인해 실수하면 '교체'되거나 '진학'에 실패한다는 공포를 안고, 결국 창의적인 도전보다는 실수하지 않는 안전한 횡패스나 롱볼에 익숙해지며 기술적 성장이 멈추게 된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전략의 부재로 인한 인프라의 차이와 기술이 차이가 결과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선진국과 추격국의 차이기도 하다.


2021년 유엔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변경했고, 이는 최초의 사례이다. 즉, 개발도상국 중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이며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기술 선진국으로의 입지도 키워왔다. 그런데 이는 모두 '양적'인 것이다.


'질적 측면'을 보자.

선진국은 단순히 '부유한 나라'라 아니라 전략적 수준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적 요건'을 갖춘 나라이다.


우리는 반도체를 잘 만들지만 반도체 생태계의 전략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데는 서툴다. 축구선수에게 투혼을 요구하지만 공간을 설계하는 인지적 축구역량을 키우는 시스템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반도체, 축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데이터를 관리하고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던 그 자리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 누군가는 밤새워 결과를 만들어 냈고, 우리는 그것을 '실력'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 실력이 쌓여도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탁월한 개인이 떠나면서 실력도 사라진다.


선진국은 개인의 투혼이 아닌 구조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일본축구의 힘은 2050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의 크기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해 설계된 내용이 어떤 감독이 와도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히딩크에 열광했던 것은 그가 잠깐이나마 우리 축구를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자 우리는 또 다른 히딩크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사람을 찾는가. 전략 없이 투혼을 요구하는가. 실패를 허용하는 환경이 아닌 실수하지 않는 사람을 원하는가.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나라를 빼앗겨보고 어렵게 살아봤기에, 다시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두려움. 왜 열심히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보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긴 호흡으로 기다리지 못하는 두려움. 지금 이기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 유소년 축구장에서 지도자가 소리를 지르고, 축구협회가 감독을 교체하고, 기업의 임원이 서류를 던지며 화를 내는 이유도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두려움은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생각하지 못한다. 두려움은 그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에 머무르게 한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두려움을 이기고 구조를 설계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큰 꿈을 꾸고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지금 지더라도 다음 세대가 이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 2002년의 누군가가 자신이 보지 못할 수도 있는 2050년을 위해 로드맵을 만드는 것. 그 로드맵에 기반해 만들어진 매뉴얼에 따라 오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하기 전에 왜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개인이 모인 집단이나 공동체 역시 왜, 어떻게를 생각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를 위한 길을 찾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찾아서 꾸준히 해 내는 일이다.



글쓴이 정원 | 전략연구소<결> 독립연구자 | 전략 자문 | "사유와 실천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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