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사회에 나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학과 공부, 아르바이트, 취업준비로도 바쁜 와중에 독서를 정말 열심히 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유학을 원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현실은 IMF였다. 학업 이외의 경험이라고는 아르바이트, 연애, 학내 사회생활이 전부였던 나는 해외연수를 떠나거나 사업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저 내 앞에 놓인 일들을 열심히 하고 독서와 사색으로 간접경험을 쌓으며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어느 여름날 학과 전산실에서 모의토익 문제를 푸는데 'CIO Wanted'라는 미국의 어느 주 CIO(Chief Information Officer, 최고정보책임자) 모집광고 지문을 만났다. CIO의 자격요건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모의테스트를 종료하고 CIO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당시에 대한민국 여성 CIO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국내 최초의 여성 CIO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토익지문에서 영감을 얻다니! 깊은 고민에 하늘은 늘 답을 주신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형태로.
취직을 하고 보니 부장급 팀장이 운영하는 IT 관리조직은 있었으나 회사 내에 CIO라는 개념은 도입되지 않았다. 이후 정보전략이 자리를 잡아가고 운 좋게 나 역시 그 안에 속하게 되었다. 그날의 그 다짐 때문일 것이다.
CIO는 되지못했고 CIO에 보고만 하다 끝났다. 어느 CIO로부터는 일을 잘 배우며 성장했고, 어느 CIO로부터는 박해를 받아 병을 얻었으나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은 그 여름날 학과 전산실에서 탄생한 나의 목표였다.
치열한 고민 끝에 예상치 못한 형태로 불현듯 답을 얻었던 나는, 그날 전산실 구석의 어느 PC 앞에서 동공이 커지고 심장이 뛰는 그 경험을 마음 깊이 간직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열심히 살면서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하늘이 도운 것이라 믿는다.
그 경험은 이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배우자의 조건을 종이에 적었고 매년 업데이트했다. 어느 날 그 종이가 담긴 지갑을 잃어버렸고, 그 지갑을 주운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전이암 판정을 받은 후 건강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행하여 회복되고 있으며, 지금은 새롭게 얻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다.
며칠 전, 친구가 동영상 하나를 보내주었다. 최재천 교수의 독서는 '일'이어야만 한다는 강의인데, 보면서 그 토익 지문처럼 깊게 빨려 들어갔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찾은 듯하다. 그 답이 무엇인지는 그렇게 살아간 이후에 공유하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성실하게 일상을 보내며 치열하게 고민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불현듯 답을 찾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답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실행해야 한다. 약을 찾았으면 복용해야 하고 걷기로 했으면 걸어야 하고 또,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접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삶의 시계는 한정되어 있고 내 등을 보며 따라오는 아이들이 있으니 나는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영감을 준 것]
https://www.youtube.com/watch?v=tSlGJmlWw0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