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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24. 2019

민폐 끼치는 싯다르타

깨달음을 혼자만 가지고 가는 싯다르타

※주의. 이 글은 지루합니다. 낮잠 자고 와서 읽으세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 사람들은 속 터진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어느 날 갑자기 온 집안의 고기니 가죽이니 하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꿈을 꾸기 시작한 직후부터였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모른다.


굴무침이 집힌 젓가락이 입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아내는 몸을 뒤로 힘껏 젖혔다.
"얼른 먹어. 팔 아프다......"
장모의 팔이 실제로 떨렸다. 아내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안 먹어요."
처음으로 아내의 입에서 또렷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뭐야!"
고함을 지른 것은, 비슷한 다혈질인 장인과 처남이 함께였다. 처남댁이 얼른 처남의 팔을 잡았다.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이 터진다. 이 애비 말이 말 같지 않아? 먹으라면 먹어!"
나는 아내가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못 먹겠어요.'라고 대답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죄송하지 않은 듯한 말투로 담담히 말했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절망한 장모의 젓가락이 거두어졌다. 늙은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곧 폭발할 듯한 정적이 흘렀다.
 _한강 「채식주의자」


「이방인」의 뫼르소도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니.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는 빠르고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_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은 그래도 1인칭이기 때문에, 뫼르소의 생각을 나름 충실히 담았다. 반면, 「채식주의자」는 정작 주인공 영혜의 생각을 듣기가 어렵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만 영혜를 그린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는 거지? 언제나 궁금했는데, 묻지 못했어."
그녀는 숙주나물을 집던 젓가락을 멈추고 그를 건너다보았다.
"대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돼."
여전히 머리 한편에서 진행되는 성적인 영상들과 싸우며 그는 말했다.
"아니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실 테니까."
그녀는 담담히 말하며 나물을 씹었다.
"...... 꿈 때문이에요."
"꿈?"
그는 되물었다.
"꿈을 꿔서...... 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 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
"얼굴?"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그를 향해 그녀는 낮게 웃었다. 어쩐지 음울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고 했잖아요."
그럼 왜 햇빛 아래서 가슴을 드러냈던 거지, 라고 그는 묻지 못했다. 마치 광합성을 하는 돌연변이체의 동물처럼, 그것도 꿈 때문이었나?
 _한강 「채식주의자」


설명을 하지도 않고,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꼭 이해시킬 필요없는 점. 깨달은 사람의 특징이다.


점차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었다. 그제야 그는 그녀의 표정이 마치 수도승처럼 담담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치게 담담해, 대체 얼마나 지독한 것들이 삭혀지거나 앙금으로 가라앉고 난 뒤의 표면인가, 하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시선이었다.
 _한강 「채식주의자」


뫼르소와 영혜는 어느 부분에서는 비슷한다. 둘 다 인위적인 것들을 거부한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깨달음 안에서, 폭력이든 폭력에 대한 처벌이든 뫼르소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영혜는 광적으로 폭력을 거부한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야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_한강 「채식주의자」


뫼르소와 영혜는 각자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보이는 양상은 완전 다르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이고, 영혜는 스스로를 죽인다. 뫼르소는 민폐 끼치는 싯다르타인 반면, 영혜는 깨달음을 혼자만 가지고 가는 싯다르타다.




※ 쓰고보니 참 지루하다. 「채식주의자」와 「이방인」을 읽은 사람들은 공감이 좀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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