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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04. 2019

어쩌다 카드가 사주는 저녁은 근사하고

카드를 긁는 일이 갈수록 쉬워지고 있다.

이제는 카드가 없어도 카드를 긁을 수 있다.

마치 노동자처럼 성실히...


카드 키드

카드가 사준 정장을 입고
카드가 사준 구두를 신은 출근길은 벅차다
어쩌다 카드가 사주는 저녁은 근사하고
카드가 큰맘 먹고 들여준 침대는 푹신하다

카드가 현금서비스 해준 축의굼을 들고 다녀오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은 처연하게 찬란하다
입사 삼년 차 카드 키드,
야근에 지쳐 귀가하는 밤은
카드가 카드론으로 얻어준 원룸이 있어 아늑하다

카드 키드가 되기 위한 지난날은 아름다웠다
스펙에게 내준 대학생활은 교양 없이 품위 있었고
자기소개서 속으로 들어간 스펙은 뻔뻔하게 자랑스러웠다
서류 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지던 입사 시험,
처음으로 면접 통보를 받던 날은
팬파이프 같은 빛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카드가 사주는 패스트푸드는 먹을 만하고
카드가 지켜주는 직장생활은 아직 견딜 만하다
정기적금을 해약해 카드에게 이체하고 남은 돈,
지방에 사는 양친께 부쳐드리던 손은 대견하다

월급날 받은 급여는 어김없이 카드에게 옮겨간다
'언제 취직할 거니'를 지나 '언제 '결혼할 거니'까지
기적적으로 와 있는 카드 키드, 카드는
희망 복근을 카워보는 건 어떠냐며 헬스클럽을 권유한다

 _박성우 「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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