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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16. 2020

오래된 기침 하나를 꺼낸다

할머니와 함께 오래 살았다. 나는 이쁨만 받고 자랐기 때문에, 뭐라 말할 게 없지만, 어머니는 꽤나 고생했을 거다. 고집이 어마어마한 할머니였다. 나 국민학생 때, 곰방대로 담배를 피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기침의 현상학

할머니가 흉곽에서 오래된 기침 하나를 꺼낸다.
물먹은 성냥처럼 까무룩 꺼지는 파찰음이다
질 낮은 담배와의 물물교환이다
이 기침의 연대는 석탄기다
부엌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원천징수하듯
차곡차곡 꺼내어 쓴 그을음들이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아랫목으로 구들장으로
아궁이로 내려간다 구공탄 구멍마다
폐(廢), 적(寂), 요(寥) 같은 단어가 숨어 있다
이들도 집의 식솔이다 가끔
일산화탄소들이 비눗방울처럼 올라온다
할머니, 기침 하나를 펴서 아랫목에 널어둔다
장판은 담뱃재와 열기로 까맣고 동그랗다
기침을 꺼냈는데 폐 전체가 달려나온 거다
양쪽 폐를 칠하느라 염료를 다 써서
할머니 머리는 온통 하얗다

 _권혁웅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나도 일찍이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나이가 들며 고집이 세진다. 경험이 쌓이면서 고집이 세진다. 가치관이 확고해지면서 고집이 세진다. 새치도 몇년 전부터 함께 하고 있다. 다른 곳은 아니고 늘 같은 곳, 오른쪽 귀 윗 부분에만 새치가 머무른다. 이 새치도 고집이 장난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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