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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22. 2020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_이상 「날개」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학창시절부터 들어서 제목은 익숙하나, 이제야 읽어봤다. 전부터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마침 쏜살에서 아주 저렴하게, 그것도 아주 작고 이쁜 책으로 나왔길래, 샀다.



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니, 이북은 100원 짜리도 있고, 200원 짜리도 있고, 심지어 0원에 나오기도 했다.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그런가 보다.



독특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잉여의 삶을 그린다. 귀여운 잉여다.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한다. 그러면서 자기 아내 이쁘다고 헤헤 거린다. 그럴듯한 단어를 사용하며 현학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현실은 이불 속이다. 지금의 상황의 만족한다며 자위하지만, 한편으로 날개가 돋아나는 상상을 한다. 이건 마치.. 내가 아닌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을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가 없고 한참 자고 깬 나는 속이 무명 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띵띵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神經)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 귀엽고 느낌 있다. 추욱 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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