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숫제 죽어 주었으면, 배 속에서 죽든지 낳다가 죽든지 아무튼 꼭 죽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배 속의 것은 죽지 않고 태어났고, 딸이었고, 지금 미국에 가 있는 막내딸이자 고명딸이다.
그 딸자식이 에밀 미국에 데려가! 개천에 용이 나도 분수가 있지, 하긴 위해 기른 자식보다 천덕꾸러기 자식 덕을 본다고들 하더니만.
_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이런 것들은 다 당장 코앞의 걱정이고, 먼 후일까지 지금 빌어 두고 싶고, 자기의 사후 세계까지 지금 빌어두고 싶고, 노파의 조그만 머리엔 빌어 두고 싶은 것이 쇄도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저, 비나이다. 그저그저...... 부처님, 제 마음 아시지요. 네, 제 마음 아시지요."
비는 데 당해서 노파가 이렇게 말주변이 없어 보긴 처음이다. 그러나 노파의 마음은 술술술 많은 말을 했을 때보다 오히려 빠르게 안정되어 오로지 경경할 따름이다. 부처님께서 저절로 다 아시고 다 들어주실 것 같다. 고맙다. 너무 고마워 노파는 손녀를 불러 돈 남은 걸 다 달래서 불상의 무릎 위에 공손히 바친다.
_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