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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n 24. 2020

제 마음 아시지요

 _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박완서의 글은 처음 읽었다. 글이 너무 생생해서 깜짝 놀랐다. 소설을 평소에 잘 읽지 않아서 그런지 자주 놀란다. 박민규를 읽을 때도 놀라고 장강명을 읽을 때도 놀라고 이번에는 박완서에 놀랐다. 그의 묘사를 고 있자면, 생생한 장면이, 소리까지 보이는 듯 하다.



미국으로 가는 할머니와 배웅하는 손녀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마음이 고약하다. 밉다. 그런데 읽다 보면 마냥 미워할 수는 없다. 연민하게 된다.


숫제 죽어 주었으면, 배 속에서 죽든지 낳다가 죽든지 아무튼 꼭 죽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배 속의 것은 죽지 않고 태어났고, 딸이었고, 지금 미국에 가 있는 막내딸이자 고명딸이다.
그 딸자식이 에밀 미국에 데려가! 개천에 용이 나도 분수가 있지, 하긴 위해 기른 자식보다 천덕꾸러기 자식 덕을 본다고들 하더니만.
 _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한국이 지긋지긋해 떠난 다른 가족들처럼, 할머니도 미국으로 떠난다. 손녀는 마지막으로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 미국에 간다고 떵떵거리던 할머니도 불상을 보는 순간 불안이 솟구쳐 오른다.


이런 것들은 다 당장 코앞의 걱정이고, 먼 후일까지 지금 빌어 두고 싶고, 자기의 사후 세계까지 지금 빌어두고 싶고, 노파의 조그만 머리엔 빌어 두고 싶은 것이 쇄도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저, 비나이다. 그저그저...... 부처님, 제 마음 아시지요. 네, 제 마음 아시지요."
비는 데 당해서 노파가 이렇게 말주변이 없어 보긴 처음이다. 그러나 노파의 마음은 술술술 많은 말을 했을 때보다 오히려 빠르게 안정되어 오로지 경경할 따름이다. 부처님께서 저절로 다 아시고 다 들어주실 것 같다. 고맙다. 너무 고마워 노파는 손녀를 불러 돈 남은 걸 다 달래서 불상의 무릎 위에 공손히 바친다.
 _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 묘사가 실감난다. 음성지원 되는 느낌이다.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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