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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n 19. 2020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_이상 「권태」

작가 이상은 이상한 작가다. 유명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상 소설 「날개」, 「봉별기」를 제외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뿐이다. 현학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는지, 정형화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추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두 번 읽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문장은 종종 나온다. 이 종종을 위해서 인내심을 꽤 발휘해야 하는 게 문제다.



아내에게무엇을물어보리오? 그러니까아내는대답할일이생기지않고 따라서부부는식물처럼조용하다. 그러나식물은아니다. 아닐뿐아니라여간동물이아니다.
 _이상 「지주회시」


이상은 종로에 다방을 차렸다. 이름은 「제비」. 여친 금홍과 함께 운영하다 망했다. 소설 「날개」도 관련이 있지만, 특히 「봉별기」는 여친 금홍과 헤어지는 이야기다.


방밖에서아내는부시럭거린다. 내일아침보다는너무이르고그렇다고오늘아침보다는너무늦은아침밥을짓는다.
 _이상 「지주회시」


林檎一個ガ墜チタ。地球ハ壞レル程迄痛ンダ。最後
最早如何ナル精神モ發芽シナイ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_이상 「최후」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 동반자살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다자이 오사무가 떠오르기도 한다. 금홍과 헤어지고 다시 다방을 차렸는데, 이름은 「학」과 「69」였다. 역시 망했다.



근심이 나를 제(除)한 세상보다 큽니다. 내가 갑문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潮水)가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는 않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돌며 그러는 동안에 이 육신은 풍마우세(風磨雨洗)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창백한 동무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부고도 동봉하여 있습니다.
 _이상 「산촌여정」


메소이스트는 마조히스트(masochist)를 말한다. 風磨雨洗는 바람에 갈리고 비에 씻긴다는 뜻이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_이상 「실화」



★★★★★ 언젠가 이상의 글을 음미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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