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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n 11. 2020

내가 조선의 글이다

_설흔 「우리 고전 읽는 법」

새로운 세계였다. 우리 고전이라니. 저자는 조선 시대의 산문, 일기, 편지 등을 소개한다. 저자는 고전 산문 덕후다.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구경하듯이 읽었다. 가벼운 책이라, 처음 읽어보는 책으로 좋았다. 당시 문인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유명한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는 내용도 많다. 어떻게 보면 유명한 래퍼들이 서로 공격하는 디스랩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브로맨스


문인들이 전부 남성이다 보니 서로 브로맨스를 고백하는 내용이 많다. 가끔은 로맨스로 넘어가기도 한다.


어제 그대가 정자 위 난간을 배회할 때, 나는 다리 곁에 말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서로 간의 거리가 한 마장쯤 되었겠지요. 우리가 바라본 곳은 아마도 그대와 내가 서 있던 그 사이 어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_박지원 「경지에게 답함」


비건


신기하게 이때도 채식을 주장하던 사람이 있었다. 윤리적 목적의 채식이다.


힘닿는 데까지 모든 짐승을 다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바로 약육강식의 태도를 옹호하는 것이다. 그건, 사람의 도가 아니라 짐승의 도다.
 _이익 「고기를 먹는다는 것」


중국


홍대용은 중국에 가서 친구를 사귀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랑캐만으로만 여겼던 청나라의 선진 문명을 솔직하게 기술한 것도 놀라웠지만 중국인 친구 세 명을 사귀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조선 역사상 중국인 친구를 둔 이는 홍대용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 전까지 중국인이란 경모의 대상이었지 우정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던 겁니다.
 _설흔 「우리 고전 읽는 법」


죽음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글도 많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글도 많다. 당시에는 아프면 죽는 것이니, 미리 죽음을 예감하고 삶을 정리하는 글을 썼다.


그 사람됨이 선을 즐기고 옛것을 좋아하며 행동에는 과단성이 있었는데 마침내 그것 때문에 화를 당했으니 운명이다.
 _정약용 「죽음을 앞두고 일생을 회고하다」



문인들 중에는 덕후가 많았는데, 벼루 덕후, 꽃 덕후, 그림 덕후 등 다양했다. 책 덕후는 책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몇 해 전 겨울, 내 작은 초가가 너무 추워서 입김이 곧장 성애로 바뀌었으며 이불깃에서는 와삭와삭 소리가 났다. 게으른 나였으나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몸을 일으켜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덮어 추위를 조금 막았다. 「한서」가 아니었다면 얼어 죽은 귀신이 될 뻔했다. 어젯밤에는 집 뒤쪽에서 지독한 바람이 불어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논어」 한 권을 뽑아 바람을 막은 후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대단함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_이덕무 「이목구심서」
「맹자」가 그나마 내 집에 있는 물건 중 귀한 것인데 하도 배가 고파서 돈 이백 푼에 팔아 버렸지. 그 돈으로 밥을 지어 먹었더니 배가 엄청 부르더군. 나는 신이 난 얼굴로 영재(유득공의 호)에게 달려가 내 처신이 어떠냐고 한바탕 떠들어 댔지. 굶주림에 시달리기로는 나 못지 않았던 영재는 내 말을 듣는 즉시 「춘추좌씨전」을 팔았어. 우리는 그 돈으로 함께 술을 마셨지. 참으로 대단한 사건 아닌가? 맹자가 손수 밥을 지어 내게 먹여 주고, 좌구명이 직접 술을 따라 내개 권한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으니 말이야.
 _이덕무 「이서구에게」


가난


문인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봉급이 적고 뇌물이 일반적인 풍토여서 양심적일수록 굶었다. 청렴이라는 단어는 곧 가난을 뜻했다.


유관은 우리나라의 이름난 재상이다. 청렴결백하고 검소하여 거처하는 집이 바람과 비를 가리지 못했다. 장마가 한 달 넘게 계속되던 때의 일이다. 천장에서 빗물이 새는 것을 본 유관은 우산을 펼쳐 들곤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산이 없다면 미리 다른 준비를 했겠지요."
이 말을 들은 유관은 빙긋 웃었다.
 _이익 「유관의 우산」



우리 고유의 무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민족주의도 국가주의도 쇼비니즘도 본능적으로 피하는 편이다. 그래도 과거 선배들이 했던 이야기를 읽어보니 관심이 간다.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조선시대라고 해서 재미있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고, 좋은 글이 없을 리가 없다.


★★★★★ 조선의 싸이월드




좋아하는 출판사1 :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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