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설흔 「우리 고전 읽는 법」
어제 그대가 정자 위 난간을 배회할 때, 나는 다리 곁에 말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서로 간의 거리가 한 마장쯤 되었겠지요. 우리가 바라본 곳은 아마도 그대와 내가 서 있던 그 사이 어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_박지원 「경지에게 답함」
힘닿는 데까지 모든 짐승을 다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바로 약육강식의 태도를 옹호하는 것이다. 그건, 사람의 도가 아니라 짐승의 도다.
_이익 「고기를 먹는다는 것」
오랑캐만으로만 여겼던 청나라의 선진 문명을 솔직하게 기술한 것도 놀라웠지만 중국인 친구 세 명을 사귀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조선 역사상 중국인 친구를 둔 이는 홍대용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 전까지 중국인이란 경모의 대상이었지 우정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던 겁니다.
_설흔 「우리 고전 읽는 법」
그 사람됨이 선을 즐기고 옛것을 좋아하며 행동에는 과단성이 있었는데 마침내 그것 때문에 화를 당했으니 운명이다.
_정약용 「죽음을 앞두고 일생을 회고하다」
몇 해 전 겨울, 내 작은 초가가 너무 추워서 입김이 곧장 성애로 바뀌었으며 이불깃에서는 와삭와삭 소리가 났다. 게으른 나였으나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몸을 일으켜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덮어 추위를 조금 막았다. 「한서」가 아니었다면 얼어 죽은 귀신이 될 뻔했다. 어젯밤에는 집 뒤쪽에서 지독한 바람이 불어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논어」 한 권을 뽑아 바람을 막은 후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대단함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_이덕무 「이목구심서」
「맹자」가 그나마 내 집에 있는 물건 중 귀한 것인데 하도 배가 고파서 돈 이백 푼에 팔아 버렸지. 그 돈으로 밥을 지어 먹었더니 배가 엄청 부르더군. 나는 신이 난 얼굴로 영재(유득공의 호)에게 달려가 내 처신이 어떠냐고 한바탕 떠들어 댔지. 굶주림에 시달리기로는 나 못지 않았던 영재는 내 말을 듣는 즉시 「춘추좌씨전」을 팔았어. 우리는 그 돈으로 함께 술을 마셨지. 참으로 대단한 사건 아닌가? 맹자가 손수 밥을 지어 내게 먹여 주고, 좌구명이 직접 술을 따라 내개 권한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으니 말이야.
_이덕무 「이서구에게」
유관은 우리나라의 이름난 재상이다. 청렴결백하고 검소하여 거처하는 집이 바람과 비를 가리지 못했다. 장마가 한 달 넘게 계속되던 때의 일이다. 천장에서 빗물이 새는 것을 본 유관은 우산을 펼쳐 들곤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산이 없다면 미리 다른 준비를 했겠지요."
이 말을 들은 유관은 빙긋 웃었다.
_이익 「유관의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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