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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l 18. 2020

신분 증명서를 없애자

 _정진상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전부터 서울대 학부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학벌 카스트를 무너뜨리는데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하는 정책이다. 마침 이와 관련한 책이 책장 한 곳을 오랜 기간 차지하고 있어서, 이번에 꺼내 읽었다.


막연히 존재했던 생각들을 언어화해주고 체계화해주는 일은 쾌락을 동반한다. 맞아맞아 하며 무릎을 치며 읽었다. 정책과 관련한 책이니 모든 세부사항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문제의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기간 학벌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가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며 입장을 정리했다. 물론 저자도 서울대다. 2004년 책인데, 아직까지 논의가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며, 학벌문제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공고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재미있었던 부분을 일부 공유한다.


계급


학벌 문제는 한 가지 기준으로 찬반 세력을 나누기 어렵다. 학부모라고 해서, 학생이라고 해서, 교육 종사자라고 해서 동일한 입장을 가지기는 어렵다. 이는 교육 문제라기보다는 계급의 문제이고, 계층의 문제다.


사회 속에서 서로 이해 관계가 대립하는 여러 계급,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유층 학부모와 빈곤층 학부모 사이에는 학교에 대한 기대에서 현상적으로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을 수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부유층 자녀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 가능성을 높여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을 훨씬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신분 증명서


더욱이 학벌은 한 때 계층 상승의 통로였고, 지금은 계급을 재생산하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상 장래가 결정되는 문제기 때문에, 생사를 걸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를 '신분 증명서'라는 적확한 단어로 형용한다.


게다가 대학입시는 열아홉 살에 치르는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승패를 가르는 단판 승부다. 수능시험 성적과 그에 따라 배정되는 대학의 졸업장은 일종의 신분 증명서다. 상위의 신분 증명서를 취득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옥을 통과할 각오가 되어 있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는 가정에서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이 기간 동안 생활 방식을 바꾸는 한편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고등학교 교장은 학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서울대 보내기' 경쟁에 기꺼이 참여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대학서열체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벌. 이를 저자는 조금 더 풀어서 '대학서열체제'라 명명한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는 서유럽이나 대학의 입학보다 졸업이 어려운 미국과 달리, 고착화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대학서열은 의미 없는 경쟁은 강화하고, 의미 있는 경쟁을 완화한다. 서열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은 상위권이기 때문에, 중위권 대학은 중위권이기 때문에 더 나은 교육을 하려는 동기가 생기기 어렵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수능 점수가 이미 졸업장인 셈이다. 저자는 이를 위장 결혼에 빗대어 설명하는데, 아주 절묘하다.


우리나라의 대학과 대학생은 기묘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학은 입학생들의 수능 점수를 필요로 하고 학생은 대학의 간판을 원한다. 대학입시를 통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 다음부터는 서로 무관심해진다. 상대방의 이름이 필요해 위장 결혼을 한 남녀가 이민국을 나서자마자 발길을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 대학서열체제에서 가장 높은 서열에 속해 있는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일단 경쟁의 관문을 뚫고 입학하기만 하면 서울대 졸업장이 보장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지방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힘들기 때문에 학습 의욕을 잃는다.
현재의 무한 입시 경쟁의 본질은 대학서열체제다. 전국의 대학들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체제를 이루고 있고 학벌주의의 포로가 된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고 싶어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경쟁을 '완화'할 수 있겠는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학을 전부 통합하는 걸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 부른다. 졸업장은 국립대학으로 나온다. 법대, 사범대, 의대 등 전문직을 위한 교육과정은 전문대학원으로 이전한다.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단계적으로 인하한다. 줄어든 사교육비만큼 증세한다. 대략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엘리트


서울대를 없애고 국립대학을 하나로 합치면 엘리트 교육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저자는 오히려 엘리트 교육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만약 엘리트들을 모아서 지배계급을 만드는 것을 엘리트 교육이라 부른다면, 이를 타파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지배 엘리트 양성은 봉건 시대의 특권층 양성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개혁안이 노리는 목표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지배 엘리트 양성소를 폐지하는 것이다.


만약 엘리트 교육이 창조적 성격을 띤다면 수능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서열화 하는 것보다, 학부별로 경쟁을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어느 학문은 어느 대학이 잘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돈을 많이 버는 학과(법대, 의대 등)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 이미 엘리트 교육은 정상화된다고 볼 수 있다.


전문대학원


현재의 대학서열제도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다 보니 모든 경쟁은 수능으로 집중된다. 노동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는 전문직 교육을 전문대학원으로 이전하면 대학교 입학 경쟁은 완화될 것이다. 대신에 전문대학원 입학 경쟁이 그만큼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일단 모든 고등학생들이 달려드는 경쟁에서 분야별로 나눠지는 경쟁이 되기 때문에 분산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경쟁을 획기적으로 낮추려면 정원을 늘려야 한다. 실제로 참여정부에서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변호사의 합격자의 수는 조금 늘었다. 사법시험이 매년 1000명을 합격시켰는데, 2020년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수는 1768명이다. 아직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다른 전문직 정원도 이처럼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변호사의 희소성은 법률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될 뿐 아니라 변호사의 평균 소득을 높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변호사 공급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법학대학원의 전체 입학 정원을 현재의 2~3배 수준으로 늘리고 이를 학구별로 배정하여 졸업자에게 변호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변호사의 충분히 공급되어 법률 서비스의 질도 올라가고 변호사의 소득도 적정 수준으로 내려올 것이므로 현재와 같은 법대 선호 현상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합리적인 이야기지만, 변호사들의 이익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피가 거꾸로 솟을 만한 주장이다. 변협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너무 많다고 연일 집회를 열며 협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일부 있다.


저자는 대학생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생각한다. 졸업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학부 공부는 안 하고 취업 준비만 한다고 생각한다. 2004년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학부 성적도 취업 준비의 대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이건 대학서열체제를 없애서 더이상 학벌이 계급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일자리 문제고, 사회보장제도의 문제다.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해서는 취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구체적인 방안은 사람마다 요구하는 게 다르겠지만, 일단 국립대는 통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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