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엄지용 「나란한 얼굴」
달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옆 사람보다 더 빨리 가고 싶었다. 가끔은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했으나,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다시 같은 길로 돌아와 있었다. 나란히 간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여기에 쓰는 글도 다 앞뒤로 달린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더 잘 쓰고 싶고, 누구보다 더 많이 쓰고 싶었다. 나란히 쓴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나란히 가자.
손 잡고 가자.
나란한 얼굴
해가 우리와 나란해지는 시간
우리도 마주한 얼굴을
나란히 한다
나란한 얼굴
가지런한 팔과 다리
우리가 선 위에 있다면
우리는 앞뒤 말고
나란히 서기로 한다
순서가 없는 얼굴로
그 나란한 얼굴들로
_엄지용 「나란한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