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문신을 했다
여자친구는 피부과에 다닌다. 항상 혼자 다니는데, 어느날 나도 같이 가자고 했다. 따라 갔더니, 예약이 되어 있었다. 눈썹문신이란다. 아프단다. '헤헤. 선물이야~' 라며 기뻐하는 여자친구를 두고 차마 도망갈 수는 없었다.
박새로이* 사진을 보여줬다.
* 박새로이 :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의 주인공이다. 나는 안 봤다.
이렇게 해주세요.
시술하는 분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취크림을 발랐다. 약한 마취인지, 여러 번 걸쳐서 반복했고, 중간에 풀려서 다시 마취를 하기도 했다. 적당히 참고 진행하려고도 했으나 아픔을 느끼면 움찔 거려서 제대로 그을 수 없었다.
버억. 버억. 뭔가를 긁는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나중에 거울을 들고 직접 하는 걸 보게 해줫는데, 만년필 같은 걸로 피부를 긁었고 그 자리가 까맣게 물드는 걸 볼 수 있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박새로이가 되었다.
안경을 샀다
항상 지나다니던 허름한 길에 안경 백화점이 있었다. 평소엔 절대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어두컴컴한 건물의 3층으로 올라서면, 한 층 전부 안경을 판매하는 곳이 나온다. 름이 안경 백화점인데, 안경 백화점 말고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규모였다. 이 세상 안경이 다 모여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하나하나 써보면서 천천히 안경을 구경하는데, 가격대가 심상치 않다. 어르신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 2,000원 짜리 안경부터 10,000원 짜리 안경까지, 저렴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이 배치되어 있다. 크고 둥그런 안경, 뿔테 안경, 네모난 안경, 김구 안경 등등 열심히 써봤다. 결국 고른 건 5000원 짜리였다.
나는 눈이 좋다. 요즘에는 반대편에 있는 지하철 노선도 글씨가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몽골인처럼 눈이 밝았다. 멀리 날아다니는 독수리도 볼 수 있었다. 안경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옵션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구입한 안경은 오로지 패션 용도다. 항상 조폭 같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커다란 안경을 얹자 모범생처럼 보였다. 알은 뺐다.
후배를 만났다.
학교 후배를 종종 만난다. 아직 재생 크림을 바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별로 티가 안나네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누가 봐도 매직으로 눈썹 그어놓은 것 같은데. 짱구인지 박새로인지 모를 굵은 송충이를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하다. 망설이다 물어본다.
형. 눈썹... 왜 했어요?
응?
이야기를 들어보니, 후배는 적지 않게 놀랐단다. 항상 남과 다른 모습, 남들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스타일이 당당하다고 느껴왔는데, 이제 하나둘 패션을 신경쓰는 모습이 걱정된다고 한다.
음...
맞다. 나는 그랬었다. 가능하면 관성대로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관습대로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신경써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시티에 밀리터리 바지를 입곤 했다. 그렇다. 나는 전역 후 패션 테러리스트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니체의 말대로, 나만의 철학보다는 여자친구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을 가진다'라고 말할 경우, 어느 정도 굳어진 태도와 의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획일화하도록 만든다. 그런 철학을 갖기보다는 때때마다 인생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낫다. 그 편이 일이나 생활의 본질을 명료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철학하는 것이다.
_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 철학도 중요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방식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나에게 연애는, 이것만큼은 포기못해! 라고 외쳐왔던 것들을 하나둘 포기하는 과정이었다. 그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많이 놀라고 있다. 나에게 실망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아마 여자친구는 더 많이 좌절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포기하는 걸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우치다 타츠루의 말에 의하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포기해야 내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결혼하면 '이게 바로 나의 본모습이야'라고 믿고 있던 자신의 자기동일성이 상당히 깨지기 쉬운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결혼생활에서는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할 만한 '최후의 보루'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한집에서 같이 살아야 하므로 계속해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엔 전부 양보하고 나서도 무언가 남는 게 있을 겁니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_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음...
물론 후배에게 이 긴 이야기를 친절하게 다 말한 건 아니다. 입 아프다. 간단히 줄여서 이야기했다.
여자친구가 이렇게 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