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작년엔 지켜보기만 했다.) 브런치 작가의 축제이자 도전의 장이 되어버린,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다른 한편으로 출판 노동자의 야근파티를 가리킨다. 눈 밑이 쾡한 출판인은 지금 어떤 브런치북을 선정할지 고민에 빠졌을 거다. 요즘 사람들은 매일같이 인터넷에 글을 써대니, 검토해야 할 양도 어마어마할 거다. 그래서 내 글까지 자세히 볼 여력은 없을 가능성이 높겠다. 그래도 만약 내 글을 읽었고, 이걸 책으로 내면 팔릴까 고민한다면, (일단 감사하고) 여기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제목
나는 제목만 보고 책을 산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치는데, 겨우 제목 때문에 책을 산다니! 출판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기운 빠지고 허탈할 수 있겠다. 나 같은 특이취향은 소수일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20%가 매출의 80%를 책임진다는 파레토의 법칙은 도서시장에서도 분명히 작용한다. 소수의 책변태들이 대부분의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니, 결국 출판사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제목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가지 제목을 준비해왔다. 이게 출판인들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길 기대한다.
힐링
요즘엔 위로와 힐링이 대세다. 적당히 우쭈쭈해주면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이중적인 의미로 청년들의 멘탈을 강타했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대표적이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이포세대, 혹은 이별과 이혼까지 포기한 사포세대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게 목적이다. 여자친구에게 매일 물리면서 사는 사람도 있어. 이렇게 물려도 살아 있으니 괜찮아. 담담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한 제목은
물려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갈등
현대인들은 갈등을 두려워한다. 좋게 말해서, 옹졸한 평화주의자다. 목소리를 높이느니 자리를 피하고, 싸우느니 헤어지고 만다.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인간관계를 다루는 책이 인기를 얻게 된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가벼운 대화체로 소개하는 「미움받을용기」가 대표적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이 책의 성공 이후 비슷한 이름의 작품이 쏟아졌다. 버텨내는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 늙어갈 용기, 나 답게 살 용기 등. 많다. 이 책들과 같이 쏟아지는 것도 좋겠다. 여자친구에게 대놓고 거짓말하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책의 제목은
여자친구에게 미움받을 용기
사랑
연애의 풋풋한 설렘은 얼마나 갈까. 좋아하는 마음은 얼마나 유지될까. 사랑은 시간적 개념인가. 에리히 프롬은 '그 마음 얼마 안간다!!' 며 달려들 것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라면, '사랑 따위는 없다!!'며 오열할 것이다. 설레는 마음은 시한부라는 명제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겠지만, 예외도 있다. 나다. 매주 KTX를 타는 (예비)주말 부부로 살면서, 아직 연애의 설렘을 유지하고 있다.
이 행복함을 잘 표현하는 제목이,
아내를 여자친구로 착각한 남자
신경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비슷한 제목의 다른 책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그런 느낌이 든다면 혹시 신경장애가 아닐까 의심해볼 만하다.
이것 말고도 생각해 놓은 게 열 개는 더 되지만, 그걸 다 늘어놓자면, 책의 절반이 책 제목에 대한 고민이 되어버린다. 제목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제안이 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