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기 시작한지 한달. 여자친구의 지방 발령이 결정되었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서 고민하다가 전화로 이 사실을 내게 알렸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담담하게 위로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보는데,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해도 보는 횟수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네. 떨어져 있는 만큼 더 애틋하겠다. 걱정마.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누구라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갑자기 지방으로 내쫒긴다면,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거다. 여자친구도 그랬던 것 같다. 결정이 나고 나서 지방으로 내려가기 까지의 한두달, 그리고 내려간 직후의 한두달 동안, 나는 법륜 스님이 되고 혜민 스님이 되어서 그녀를 달래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주말마다 만나 데이트를 하면 횟수로 따지면 한번이지만, 서울에서 하는 데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같이 있게 된다. 금요일 저녁에 내려가면 월요일 새벽까지 같이 있었다. 가끔은 금요일에 휴가를 내기도 했는데, 그러면 목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같이 있게 된다.
여자친구가 나중에 말하기를, 분명 헤어질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담담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걸 듣고, 한편으로는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님인 줄 알았다고 한다. 롱디 커플이 잘 되는 걸 본 적이 없다나. 하하. 웃어 넘겼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소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내가 롱디를 얼마나 많이 해봤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후후
서울에서 독서모임을 하고있었는데, 당시 나는 모임장, 여자친구는 모임원으로 만났다. 그리고 지방에 내려간 직후 독서모임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번엔 여자친구가 모임장, 내가 모임원이다. 모임장의 갑질을 묵묵히 견디며, 당시 내가 저질렀던 횡포를 반성하는 중이다. 한주는 내가 내려가고, 한주는 그녀가 올라오기 때문에, 두 도시에서 번갈아가면서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의 호들갑이 무색하게, 여자친구는 적응을 잘 하고 있다. 갑작스레 지방으로 쫓겨난 노동자의 비애는 지금 찾아볼 수 없다. 독서모임 공간과 서점까지 열었기 때문에, 포스 있는 커리어 우먼이나, 지적인 서점 주인, 리더십 있는 독서모임 모임장으로 보일 뿐이다.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종종 아프다. 병원에 가보면 이상 없다고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바로 아프다. 체형교정도 하고 필라테스도 한다. 몸을 움직이면 그래도 좀 낫다고 한다. 안 그래도 벌여놓은 일이 많은데 얼마전에는 유튜브까지 시작했으니 몸이 잘 버티면 그게 더 이상하다.
"큰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겠지?"
여자친구는 허지웅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나 다행히도 얼마전 완치했지만, 허지웅은 악성림프종으로 고생했다. 혈액암이다. 컨디션에 따라 심해지기도 하고 괜찮아지기도 해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의 증상도 비슷하다.
"내가 죽으면 다른 여자 꼬실거야?"
태연하게 물어보는 여자친구를 안아주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재난과 질병의 평등함 앞에서 우리만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열심히 운동하고 더 열심히 쉬면서, 무탈을 기원하는 수밖에. 그래도 고통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함께 버텨낼 것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걱정마.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100살 넘게 살지도 모르고, 재발한다면 내년에 다시 병동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의욕이 넘친다. 그리고 많은 결심들을 한다. 나는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고 말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
_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