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심쿵사. 시쳇말로 표현하면 딱 이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책이다. 최근 철학책을 몇 권 읽었더니, 이제 어려운 책은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볼만한 책을 찾았고, 떠오르는 책이 「호텔 선인장」이었다. 오랜만에 읽는데도 여전히 귀여운 책이다.
주인공은 세명이다. 모자, 오이 그리고 숫자 2. 너무 자세한 설명을 하면 문자 그대로 심쿵사 당할지도 모르니 간단한 인물 설명과 귀여웠던 장면을 인용하겠다.
이 셋은 매일 만나서 담소를 나누는 단짝 친구들이다. 책의 제목대로 호텔선인장이라는 곳에 살면서 친구가 되었다.
어느 시가의 동쪽 변두리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낡고 허름한 회색의 석조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서니 제법 신선하여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호텔 선인장', 이것이 이 아파트의 이름이었습니다.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인데도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책의 첫문장이다. 가볍고 따스한 일본식 개그가 느껴지는 시작이다.
오이는 운동을 좋아하는 밝고 쾌할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다. 다른 인물과도 운동 때문에 친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운동으로 인한 층간 소음;;)
한편, 오이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샤워를 마친 후라, 몸의 초록이 구석구석 맑고 깨끗하며, 비누 냄새와 더불어 개운하기 그지없습니다. ...
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모자는 책을 많이 읽으며, 언제나 시큰둥하고 무심한 인물이다.
모자에게는 워낙 청소하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에 수북히 쌓인 책들 사이로 무수한 거미집이 둘러쳐져 있었고, 그곳을 거북이가 자유롭게 기어다닐 뿐만 아니라, 책에도 거북이한테도 거미집에도,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히엑!"
오이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휙 비켜서더니, "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창백한 얼굴로 얘기하고 문밖으로 나갔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는 상당한 인내력을 선보였습니다.
구석구석 견학하고 나서, "무척 문학적이군요."라고 감성을 토로하였습니다.
2에게 문학은 수수께끼였습니다. 때문에, 뭔가 으스스하고 수상쩍은 것은 죄다 '문학적인 것'이었습니다. 2에게 그것은 편리한 단어였습니다.
"좀 아시네?"
2의 말에 모자도 만족한 모양입니다.
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2는 고민이 많고 예민하고 두려움도 많이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두 친구들을 만난 후에 행복을 자주 느끼고 있다.
그날 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숫자 2가 오랜만에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맛보았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맘에 드는 옥색 이불을 둘러쓰고 느긋하게 ㅡ마치 숫자 '1'인 듯한 모습으로ㅡ 잠이 들었습니다.
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모자는 도박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가기도 했다. 물론 다 날렸다.
아 참, 그날 경마가 끝난 후, 세 사람이 어떻게 해서 아파트로 돌아왔겠습니까? 마지막 레이스에 돈을 걸 때, 돌아올 버스비를 챙겨둔 사람은 2뿐이었습니다. 모자의 지갑이나 오이의 지갑은 텅 비어버렸습니다.
"말도 안돼"
2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 속에는 아주 조금, 동경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식으로 무모해질 수 있는지, 2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이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며 아파트까지 천천히 달려서 돌아왔습니다. 오이의 말에 의하면, '조깅은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에, 오이의 과육을 죄어 주고, 몸 속 수분을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여하튼, 난처한 쪽은 모자입니다. 돌아갈 차비는 없었고, 그렇다고 조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2는, 모자를 쓰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면 한 사람 몫의 요금으로 둘이 함께 돌아올 수 있으니 말입니다.
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헐퀴. 창의적이다. 심쿵 포인트기도 하다. 작가는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어떤 웃음을 지었을까.
2는 2로 태어난 이유가 있다.
오늘은 2의 생일입니다.
2는 두 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살이었고, 앞으로도 쭉 두 살일 것입니다. '2'란, 그런 것입니다. 물론, 생일은 매년 돌아오지만, 2는 그때마다 새롭게 두 살이 됩니다.
2의 아버지는 숫자 '14'이며, 어머니는 숫자 '7'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눗셈을 하였기에 2가 태어난 것입니다. 덧셈을 했다면 21이, 곱셈을 했다면 98이 태어났을 테죠. 그렇지만 2의 부모님은 나눗셈이 좋았던 모양인지, 2의 누나도 형도, 두 여동생도 모두 '2'입니다. 그들이 2의 가족이었습니다.
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책에서 가장 귀여웠던 장면은 불면증 부분이지만, 길어서 싣지 못하고, 시인 부분을 소개하겠다.
하늘도 잔뜩 찌푸린 어느 토요일, 오이는 돌연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뭘 해도 신나지 않고, 겁나고, 활력이 생기지 않는 때가 인생에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날 오이는 일터로 나갔지만, 일을 하면서도 통 재미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 있어?"
염려가 된 점장이 그렇게 물어올 지경이었습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뭐랄까, 세상이 갑자기 텅 빈 달걀껍질이 돼버린 것만 같아서."
오이가 대답합니다.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가 있기 때문에 맛있고, 아름답고, 즐거운 것입니다.
"텅 빈 달걀껍질? 뭐야, 그게."
점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인일세 그려."하고 말합니다.
시인.
그 때문이었나, 라고 오이는 생각합니다. 이제야 앞뒤가 맞는 것 같습니다. 활기찬 시인은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죠.
'큰일이야. 난, 시인이 되고만 거야.'
_에쿠니 가오리 「호텔선인장」
한국에도 이만큼 귀여운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원래 소설을 썼던 사람인데, 15년간 소설을 투고하다가 시를 한번 보내본 게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되어버려서, 갑자기 시인이 된, 이제니 작가다. 15년간 소설을 썼지만 생각도 못하게 시가 당선이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세상이 텅 빈 달걀껍질이 돼버린 것만 같았을까. 증권사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화가가 되어버린 폴 고갱의 심정이었을까.
분홍 설탕 코끼리
분홍 설탕 코끼리는 발에 꼭 끼는 장화 때문에 늘 울고 다녔다. 발에 맞는 장화를 신었다 해도 울고 다녔을 테지. 어릴 때부터 울보였고 발은 은밀히 자라니까. 두번째 분홍 설탕 코끼리가 말했다. 그렇다고 코끼리가 두 마리 있는 건 아니었다. 설탕이 두 봉지 있는 것도 분홍이 두 바닥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도 없었지만 분홍 설탕 코끼리는 오늘도 언덕에 누워 설탕을 먹고 분홍에 대해 생각했다. 코기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니, 있었나. 아주 오래전 일이라 잊었나. 설탕, 하고 발음하면 입안에 침이 고인다. 바보, 모든 설탕은 녹는다. 뚱뚱해지는 건 시간문제. 계절이 지나자 분홍 설탕 코기리는 분홍 설탕 풍선이 되었다. 아니, 그건 잘못된 말이다. 분홍 설탕 코끼리는 분홍 풍선 풍선이 되었다. 아니, 그것도 잘못된 말이다. 분홍 설탕 코끼리는 풍선 풍선 풍선이 되었다. 할 짓이 없구나. 네, 그럼요 그럼요. 풍선 풍선 풍선은 이름이 바뀌었는데도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막 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사랑받는 느낌도 없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그러듯 막 대해줘도 좋을 텐데. 풍선 풍선 풍선은 일부러 잃어버린 장화 한쪽을 손에 들고 이미 녹아버린 설탕을 음미하면서 하늘에 떠가는 분홍 설탕 코끼리를 바라보았다. 구름 같았고 추억 같았고 눈물 같았다. 불지 않는 바람의 깃털 사이로 풍선 풍선 풍선의 없는 꼬리가 한 번 나부꼈다. 아니, 두 번 나부꼈다. 아니, 세 번 나부꼈다. 분홍설탕코끼리풍선구름. 멋진 이름이다. 어제부터 슬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_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읽다보면 풍선 풍선 풍선이 되는 기분이다. 나를 누가 본다면 '할 짓이 없구나.' 하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귀여운 시다. 있지도 않은 언덕에 누워서,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지만 슬픔이 담겨져 있다. 「호텔 선인장」도 그렇다.
★★★★★ 귀여어어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