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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22. 2019

이름을 붙인다는 것

 _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정말 이상한 제목의 책이고, 읽고 나서도 약간 속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우리가 개를 왜 사랑하는지는 이 책에 나와있지 않다.


이 책의 의의는 육식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나비의 날갯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채식주의라는 단어만 있다고 생각해보자.


9명의 정상인과 1명의 채식주의자가 이야기를 한다. 정상인들은 묻고 채식주의자는 변명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채식주의자들은 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먹는 음식을 옹호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는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보면서 히피나 섭식장애자로 규정하는가 하면, 심지어 반인간적인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채식주의자가 가죽 제품을 걸치면 위선자 소리를 듣고, 일절 착용하지 않으면 순수주의자나 극단주의자로 치부된다. 이처럼 그들의 깊은 감수성은 육식주의 세상의 온갖 편견과 도발에 끊임없이 부대끼고 상처 받는다. 육식주의에 순응하여 가장 저항이 적은 길로 가기를 거부하고 소수자로 사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_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육식주의라는 개념을 가져오자.

이제는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덜 중요하다)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 있다. 먹으면 안되는 기준이 무엇이냐. 고통이냐, 감정이냐. 고통의 기준이 무엇이냐. 감정의 근거가 무엇이냐. 어려운 개념이 나오기 시작하고, 철학자가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확고히 들어선 이데올로기가 그 상태를 유지하는 주된 방법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아 있는 주된 방법은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으므로.
 _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이름이 없으면, 비판할 수 없다.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


‘자연스럽다’가 ‘정당화할 수 있다’와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은 ‘자연화’라는 과정을 통해서다. 자연화와 진정한 자연스러움의 관계는 정상화와 정상성의 관계나 마찬가지다. 한 이데올로기가 자연화된다는 것은 그 신조들이 자연의 법칙(신념체계가 과학이 아니라 종교에 뿌리를 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법)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얘기다. 자연화는 사물이 의당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다. 이를테면 육식은 단지 사물의 자연적 질서를 따르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자연화는 생물학적인 논리로 이데올로기가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그것이 유지되게 한다.
 _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이름을 붙이게 되면서, 더 이상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 실망한 책이긴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나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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