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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an 22. 2021

코로나보다 무서운 조루독감

조류가 걸리는 독감이 조류독감이듯, 조루가 걸리는 독감은 조루독감이다. 조루인 것도 억울한데 독감까지 걸리다니,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억울해도 알 수 없다. 삶은 잔인한 거니까. 조루에게 삶은 더 잔인하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조루독감이 유행이다. 어떻게 전파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보도자료 = 기사


실상은 이렇다. LG유플러스에서 보도자료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오자가 있었던 거다. LG유플러스에서 소독작업을 하는데, 조루독감에 사용하는 살균제를 쓰고 있다는 광고다. 여기까지는 재미있는 해프닝,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부지런한 언론에서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하고 맞춤법 검사도 안한 상태로 기사를 만들어 뿌린 것이다. 취재는 하지 않고 기업에서 준 자료를 그대로 보도하는 관행을 시인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안타깝게도 이런 언론이 한둘이 아니다. 이미 몇년 된 기사기 때문에 지금은 대부분 고쳤지만, 아직도 조루 상태에 머물러 있는 언론이 열개는 된다. 조루독감에 효과적인 살균제가 인터넷을 떠돌아 다닌다.



어뷰징


이걸 어뷰징이라 한다.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그대로 복사하거나 살짝 바꿔서 업로드하는 행위다. 오로지 클릭만을 노린 행태라 볼 수 있다. 레거시미디어든 작은 언론사든 가리지 않고 한다.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더라도 똑같이 생긴 기사가 수도 없이 검색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소가 여물을 씹고 또 씹고 다시 개워내서 새김질하듯이, 언론은 기사를 복붙하고 복붙해서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하나를 클릭하면 기사 하나를 열고 거기에 뜨는 기사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이 회사 프로그램에 붙여넣기 했다. 사진은 방금 복사한 기사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고 아주 약간의 성의를 더 기울인다면 다른 기사의 사진을 쓴다. 이렇게 되면 A사의 기사에 B사의 사진을 넣은 기사가 하나 나온다. 사진은 특별히 고칠 게 없고 기사 글은 조금 수정을 가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양심적인 표절이지만 진짜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텍스트의 기사가 올라가면 포털이 표절로 인식해 기사 수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선 긁어온 기사를 맞춤법에 맞게 교정한다. 그리고 문단 순서를 바꾸거나 리드 문장 삭제, 단어를 유의어로 수정하는 등 베낀 기사를 컴퓨터가 다른 문서로 인식하게 만들 방법은 많다. 한 문단을 통으로 들어낼 수도 있다. 타 언론사의 기사 내용을 기초 자료 삼아 마치 우리가 취재한 듯 새 기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_슬로우뉴스「어뷰징 기사 작성 요령」 2015-08-12 기사
팀장은 키보드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복사와 붙여넣기를 해야지, 키보드 타이핑을 왜 하냐는 것이다. 내 업무는 기사 작성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사를 작성하지 말아야 했다. 기사는 복사하고 붙여넣고 베끼는 것이지, 사안을 조사하고 알아보고 정리해 작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_슬로우뉴스「어뷰징 기사 작성 요령」 2015-08-12 기사


너무 빨리 싸서 안타까운 게 조루라면, 너무 빨리 써서 힘든 언론도 조루라 할 수 있겠다.



조루


웃을 일이 아니다. 조루에는 슬픈 진실이 숨어있다. 아래 기사에 따르면, 조루는 불안감과 관련이 있다. (세로토닌 분비와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다.)


3초. 토끼의 교미 시간이다. 토끼의 교미시간이 짧은 것은 생존 본능이다. 빨리 도망치기 위해서다. 모기도 3초 만에 끝낸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말은 평균 교미시간이 10초 내외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지는 삽입과 동시에 사정한다. 수말의 성기가 커서 말은 강한 성적 능력의 상징이지만 사람으로 치면 2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조루에 해당한다. 너무 길어서 ‘고민’인 동물도 있다. 주변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뱀은 75시간 이상 느긋하게 즐긴다.
 _푸드앤메드「우리나라 남성의 25~30%가 조루증」2019-05=20 기사


이제 종이신문은 안 팔린다. 대신 핸드폰으로 기사를 본다. 독자는 돈 한푼 안낸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는 광고에 목맬 수밖에, 클릭수에 맬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제목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클릭한다. 클릭하고 오래 머무르는 만큼 광고수익이 책정된다. 그게 언론사의 수입이다. 오랜 시간 걸려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만드는데는 어마어마한 뚝심이 필요하다. 광고수익 없이 버틸 수 있는 단단함. 반면, 복사해서 살짝 바꾸고 기사를 올리면 광고수익이 훨씬 잘 들어온다.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는 언론사는 어뷰징에 손을 댄다.


언론은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나는 불안하다! 나는 조루다! 여러번 복붙해가며 세상에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실 나도 조루독감에 걸렸다. 방역에 철저히 협조하지 않고 카페에서 글을 써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조루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만 걸리고 말았다. 일단 써버리고 낚시대 앞에서 조마조마 기다리는 언론처럼, 일단 올려버리고 구독자수가 언제 오르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불안하다. 뱀이 교미하듯이 느긋하게 생각하고,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천천히 퇴고하려고 마음먹지만, 오늘도 조회수를 확인하고 말았다.


나도 조루독감에 걸린 이상, 이제 더이상 언론을 놀리지 않겠다. 연민의 감정으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걷겠다. 언론의 불안은 결국 재정적 위기에서 나온다. 카카오뱅크 어플을 켜서 「진실탐사그룹 셜록」에 후원했다. 셜록만큼은 조루독감 걸리지 않도록 기원하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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