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재발견

_김기택 「사무원」

by 이태원댄싱머신

나는 김기택을 좋아한다. 그의 시는 묘사가 특출나다. 평온한 일상도 그가 표현하면 다시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때도 놀라지만, 무심코 지나쳐왔던 일상적인 것을 재발견했을 때 더욱 놀란다. 그래서 더욱 놀라는 건 어렵다. 김기택은 도시 일상을 보고 글을 쓰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독자라면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도시에 살면서도, 이런 풍경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포장마차

칼자국 무늬로 나이를 먹은
늙은 도마 위에서
산낙지 한마리
내리치는 식칼과 싸우고 있네
희고 말랑말랑한 살로
맹렬한 꿈틀거림으로
모가지에서 뿜는 피처럼 싱싱한 비린내로

_김기택 「사무원」


탕탕, 도마를 내려치는 식칼을 보면서 시인은 산낙지를 생각했나 보다. 나는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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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아래에서 조는 할머니를 볼때, 시인은 평생을 생각한다. 잠깐이라는 시간과 평생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봄날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빛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잔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
잘만 하면 한순간 뽀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거리던 봄볕에 못 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_김기택 「사무원」


그의 시는 가만히 세상을 묘사한다. 느릿느릿 걷는 소가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듯이, 세상에 이야기를 부여한다. 세상이 몸을 일으킨다.


★★★★ 화려한 표현도 새로운 무언가도 없다. 심심한 목소리에서 느끼는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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