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김기택 「사무원」
포장마차
칼자국 무늬로 나이를 먹은
늙은 도마 위에서
산낙지 한마리
내리치는 식칼과 싸우고 있네
희고 말랑말랑한 살로
맹렬한 꿈틀거림으로
모가지에서 뿜는 피처럼 싱싱한 비린내로
_김기택 「사무원」
봄날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빛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잔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
잘만 하면 한순간 뽀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거리던 봄볕에 못 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_김기택 「사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