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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n 13. 2019

확신은 무섭다

강연을 거절하는 윤종신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은 무섭다. 남미 원주민들은 사람이 아니야, 라고 철석 같이 믿었던 스페인 군인들은 원주민들을 인간꼬치로 만들었다. 유대인은 열등한 족속이야, 라고 생각했던 나치는 피가 섞이는 것을 방지하고 순수한 게르만 혈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스실을 돌렸다.


노예로 팔려가는 도중 저항하는 방법은 먹는 것을 거부하거나 자살이었다. 흑인 노예를 인간이 아니고 상품으로 생각했던 유럽인에게 이런 저항은 몹시 난감한 것이었다. 먹지 않으면 미대륙에 도착해도 상품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갑판 밑에 가두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노예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_알렌산더 팔콘브릿지 외 「하늘은 왜 이런 일을 모른척 하셨을까?」


흑인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날씨가 좋으면 갑판 위로 데려와 춤을 추게 하였다. 춤을 추기를 주저하거나 날렵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채찍으로 맞았다. 그런 이유로 항상 그 옆에는 아홉 가닥 채찍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_알렌산더 팔콘브릿지 외 「하늘은 왜 이런 일을 모른척 하셨을까?」




소설 「영으로 나누면」은 확신을 가진 두 인물을 그리고 있다. 수학과 논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인물과 관계,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인물이다. 저자 테드 창은 이렇게 같은 형식을 반복하는 구조를 자주 그린다.


르네는 천재다. 직관과 논리가 만난다. 우리는 1+1=2 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면서, 논리적으로도 이해한다. 르네는 복잡한 수식과 계산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직관적으로 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수학적 발견을 해내고 패닉에 빠져버린다. 


1=2


말도 안 되는 증명을 해버린 것이다. 관점을 바꾸고 방법을 바꿔서 계산해봐도 전혀 다른 두 숫자가 같다는 결론이 나와버린다.


르네는 칼에게 그 종이를 건넸다. 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제일 위를 봐." 그는 그곳을 보았다. "이제 제일 아래를 봐"
칼은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난 어떤 수도 그 이외의 임의의 수와 동일하다는 걸 보여주는 형식 체계를 발견했어. 거기 그 종이에 쓰인 건 1은 2와 같다는 증명이야. 어떤 수라도 좋으니까 두 개를 골라봐. 그것들 또한 같다는 걸 증명해 보일 테니까."
칼은 뭔가를 기억할고 애쓰는 듯했다. "이건 0에 의한 나눗셈이야, 맞지?"
"아니. 난 법칙을 위반하지도 않았고, 명확하지 않은 용어도 쓰지 않았고, 독립된 공리 따위를 암묵적으로 가정하지도 않았어. 그 증명에서 금지된 방법은 단 하나도 사용되지 않았어."
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잠깐 기다려봐. 1과 2가 같지 않다는 건 뻔한 사실이잖아."
"하지만 형식적으론 같아. 지금 당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게 바로 그 증명이야. 난 절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간주되는 것들만 사용했어."
"하지만 이건 모순이잖아."
"맞아. 형식 체계로서의 수론은 모순이야."
 _테드 창 「영으로 나누면」


이는 수론의 대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수학 체계, 논리 체계가 송두리째 부정당한다.


"아직도 모르겠어?" 르네는 힐문했다. "난 방금 수학 대부분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했어. 이젠 그것들 모두가 무의미해진 거야."
르네는 점점 흥분하면서 거의 냉정을 잃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칼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어떻게 그걸 장담할 수 있지? 수학은 여전히 유효하잖아. 그걸 인식했다고 해서 과학이나 경제계가 당장 무너지는 건 아냐."
"그건 그들이 사용하는 수학이 단지 트릭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하나의 기억법에 불과해. 어느 달이 큰 달인지를 알기 위해 손등의 손가락 관절로 셈하는 것과 같은 거야."
 _테드 창 「영으로 나누면」


평범한 사람들은 직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논리는 이를 도울뿐이다. 만일 논리가 직관과 다르다면, 우리는 논리를 부정한다. 그럴 리가 없어.. 하고 넘긴다. 하지만 르네는 직관과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정말로 세계관을 부정당해 버린다.


르네는 그의 말이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최근 들어서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이 힘들어졌고 칼과 논쟁을 벌인 이래 이 경향은 더 심화됐다. 학과 동료들도 이제 그녀를 피했다. 집중력도 사라졌고 어젯밤은 악몽까지 꿨다. 임의 개념을 수학적 방식으로 번역하는 형식 체계를 발견하는 꿈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생과 사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_테드 창 「영으로 나누면」


칼은 르네와의 결혼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아무리 해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느낀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들은ㅡ" 여기서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상상해보 적도 없는 거였어. 만약 그게 보통의 우울증 같은 거였다면 당신도 이해했을 거고,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것과는 달라. 나는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신학자가 된 느낌이었어. 그럴까봐 단순히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아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아니."
 _테드 창 「영으로 나누면」


르네는 논리가 끝난다는 것을, 칼은 관계가 끝난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한다. 둘은 이에 확신하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다.


칼은 르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자기도 정확하게 알며, 그 자신도 그녀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것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떼어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이었고, 그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_테드 창 「영으로 나누면」


현실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연인과 헤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도, 완전한 확신은 없다. 그보다 헤어지기 싫다는 감정이 먼저 앞선다. 그러다 보면 결국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다시 안정적인 단계를 맞이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확신이 없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작은 행운이다.




윤종신은 강연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바뀌고, 자신을 항상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말에 진정성을 느낀다. 세상은 이런거야, 삶은 이렇게 사는 거야, 하는 확신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제가 강의, 강연을 항상 정중히 거절하는 이유는.. 제 생각이 매일 바뀌기 때문입니다.. 제 말에 제가 책임질 수 없기에.. 제가 제 자신을 항상 의심하기에.. 전 좋은 말씀들 열심히 듣구 영향받고 살겠습니다^^
 _SBS 뉴스 「윤종신이 '강연 제의' 받아도 계속 거절하는 이유」 20190611 기사 (윤종신SNS에서 재인용)


우리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그 사실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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