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는 일본군이 필리핀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헨미 요라는 일본 저널리스트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현장을 답사한다. 가이드는 당시 일본군을 토벌했던 군인이었다. 가이드는 당시를 회상하며 섬을 안내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노인이 침묵을 깼다.
"나도 그걸 먹었지."
"예?"
내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
"나도 먹었다니까."
눈앞에 서 있는 호탕한 노인이 사람을 먹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마치 말고기를 먹었다고 하는 양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살레 노인은 양륙대 병사들이 숨어 있던 현장을 가리키면서 그걸 어떻게 먹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47년 초, 잔류 일본병 토벌 작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희미하게 날이 밝는 새벽녘의 급습이었기 때문에 현장은 아직 어두웠다. 일본 병사들은 도망치고 없었다.
오두막 근처에 있던 냄비에 담긴 음식이 아직 따뜻했다. 당시 20대 청년으로 한창 먹성이 좋던 살레는 아침을 거르고 출발한 터라 배가 몹시 고팠다.
냄비 안의 고기 다섯 점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어린 개를 잡아 끓은 스튜라고 생각했다. 짠맛이 조금 났다.
햇빛이 비치면서 귀나 손가락이 드러나서야 그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무 밑에 사람의 머리도 있었다.
"토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지."
노인은 카톨릭 신자였다. 곧바로 신부에게 고해했다. 신부는, 모르고 먹었으니 죄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_헨미 요 「먹는 인간」
마을 사람들한테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여동생도 잡아먹혔어요."
"우리 할아버지도 일본 병사한테 먹혀 버렸소."
"나무 봉에 돼지처럼 매달려 끌려가서 먹혔단 말이요."
'먹혔다' 이 피동사가 내 수첩에 순식간에 열 개나 나열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울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착 가라앉은 고요한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내 수첩이 '먹혔다'는 격렬한 말로 새까맣게 뒤덮이는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노인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_헨미 요 「먹는 인간」
마을 사람들의 반응처럼, 헨미 요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사실 이 사건의 개요는 1992년 가을, 교도통신의 마닐라지국에서 보도했다. 그러나 1947년에 잔류 병사가 발견된 이후, 현대사에서는 지극히 보기 드문 병사들의 '조직적 식인 행위'로 연합군 사법 관계자들이 기겁한 이 사건의 전모는 일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_헨미 요 「먹는 인간」
잊고 싶고, 은닉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자는 굳이 끄집어내어서 말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필리핀 사람들을 잡아 먹었던 일본 군인 중 일부는 필리핀과 계속 인연을 맺으면서 후원을 해주기도 한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은닉하는 것도, 꺼내어 밝히는 것도, 사죄하는 것도 전부 일본이, 우리 인간이 한다.
주로 가해자였던 일본이 피해자인 척하며 사과하지 않는 점을 우리는 종종 비판하곤 한다. 반대로 우리는 주로 평화를 바라던 피해자였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가해 사실을 숨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중국을 침략했던 광개토대왕을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로 꼽는다.
이제는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는 지금도 한 가지를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의 군복을 봤어요. 한국군 백마부대의 상징이 달려 있었어요."
나이는 "한국군 세 명에게 성폭행을 당해 총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_BBC 「베트남 전쟁: '성폭행범 군복을 봤어요. 한국의 백마부대였죠'」 2019-02-28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