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승한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 같다.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홍대 느낌 나는, 기괴한 이름을 한겨레에서 발견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스틸컷으로만 소비하던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진지충이었다. 보통 가벼운 이야기는 가볍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큼 무겁게 이야기한다. 형식이 곧 내용이기 때문에, 가벼운 소재를 진지하게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는 사람들이 한 귀로 흘려보내는 가벼운 이야기들에서 감춰진 내용을 꺼내어 보여준다.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 한 명을 이야기할 때도 필모그래피를 주르르 나열하는 걸 보면, TV는 정말 엄청 많이 보는 사람 같다.
5년간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중 일부만 뽑은 책이다. 읽자마자 작가의 다음 책이 기대됐다. 아마 다른 칼럼들은 책으로 안 나올 것 같으니 웹으로 읽어야겠다. 저자가 다른 연예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생각이 깊고, 이를 재미있게 잘 표현하는 이야기꾼이다. 이정도가 되는 작가는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 재능이 없다는 건 아주 오랜 콤플렉스였다. 위로는 공감에서 나오고 공감은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나는 생의 대부분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어 '내가 왜 그랬을까'를 습관처럼 되물으며 살았으니까. 나는 남의 어깨를 빌려 우는 것에는 익숙해도 내 어깨를 빌려주는 것에는 젬병인 인간이었다. 공감이 있어야 할 자리를 관용구로 채운 위로로는 그 누구도 제대로 보듬어줄 수 없었으니, 누군가를 위로해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늘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한겨레> 토요판에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칼럼을 연재하며 가장 오래 염두에 두었던 건 사람을 이해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누군가를 동의하거나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일 이전에 그 사람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렀을지 있는 힘껏 이해하려 노력해보자고, 우리는 때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너무 쉽게 타인을 외면하거나 비난하고 배척한다.
_이승한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공저자로 들개이빨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웹툰 하면, 항상 제일 먼저 꼽던 「먹는 존재」의 저자다. 「먹는 존재」는 음식을 테마로 하는 웹툰인데, 음식 부분은 심혈을 기울여서 화려하게 그리고, 나머지는 거칠게 그리는 느낌이 있다. 반면 이 책은 음식이 없어서 그런지, 발로 그렸다. 원래 거친 그림체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발로 그렸다. 웹툰에서도 작가의 아우라가 팍팍 느껴져서, 이게 주인공 이야긴지 작가 이야긴지 헷갈렸는데, 이 책에서도 들개이빨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단순히 이승한의 글을 이미지화한 것이 아니라, 이승한의 글을 읽고 나서 그린 들개이빨의 그림이, 발로,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위로와 깨달음에 응원과 호기심까지 다 담겨 있다. 책 서평에서 목차를 적는 경우는 없었지만, 목차만으로 관심이 가는 주제들이어서 간단히 옮겨본다.
머리말 - 자신만의 춤을 추는 모든 이에게
주눅 든 청춘의 얼굴 - 임시완
또 하나의 벽을 기어오르다 - 광희
외줄 위에 서서 - 박지윤
평범한 아줌마의 독립적 서사 - 라미란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빛나는 - 박철민
역사 한가운데 던져진 장삼이사 - 송강호
가혹한 재발견의 굴레 - 송혜교
불편하디? 젊은 여자라서? - 김유정과 태도 논란
언제까지 무릎만 칠 건가 - 샘 오취리와 인종차별
양희은, 이선희, 이상은 그리고 - 엠버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는 거잖아 - 효연
-들개이빨의 춤 첫 번째
더 가닿고 싶어요. 혼자 말고 함께 - 이소라
전설 말고 디바 말고 노래 잘하는 - 김추자
잠시 멈춰 음미해도 좋다. 그 결을 - 윤상
나야, 강철의 소녀 - 예은
그들에게 질주를 요구하는 세상 - 레이디스 코드
“어차피 너도 나와 다를 바 없잖아?” - 블랙넛과 비뚤어진 마케팅
온전히 그 자신으로 탁월한 - 종현
노래를 부르려면 웃겨야 하는 정말 웃기는 세상 - 노라조
아픈 청춘 위로했던 그들의 응원가 - 크라잉넛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다 - 소녀시대와 〈다만세〉의 10년
-들개이빨의 춤 두 번째
고정관념을 흔드는 ‘고운 남자’ - 김기수
“고개를 숙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고개를 들다 - 김부선
무지개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 - 한국 문화 속 호모포비아
기대만큼 아파 보이지 않아 실망하셨나요 - 정형돈
어떻게 증언할 수 있을까, 그 비극을 - 9·11 테러와 세월호 참사
가장 악랄하면서 가장 평범한 - 김의성
드라마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 참사, 그 이후
타인의 절박함을 유희 삼아 행복한가요 - 〈짝〉과 리얼리티 쇼
-들개이빨의 춤 세 번째
절실함이 그를 추동한다 - 염정아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누릴 수 있는 당연한 보상 - 차승원
서툴고 아픈 ‘나’를 닮은 배우 - 이보영
산전수전이 빚어낸 너른 품 - 이영자
비로소 빛을 발한 ‘별난 여자’의 품격 - 박미선
볼 때마다 낯선, 어디에든 녹아드는 - 이민지
누구의 아역이 아닌 현재형의 배우 - 진지희
버티는 이에게 기회는 온다 - 황정음
-들개이빨의 춤 마지막
연예인 걱정은 정말 의미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과 위로를 보내게 되는, 그래도 같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걱정을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쓸데 없는 걱정을 해볼까요.
연예계란
대중의 숭배와 혐오라는 땔감으로 돌아가는 곳.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대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거나 혐오하는 일은 드물죠.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쓸데없이
진심 어린 위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을 걱정합니다.
_들개이빨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고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