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서고 앞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고 몇 시간을 놀다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김해에서 요즘 민다는 핫플레이스 #봉리단길 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리단길 짝퉁이다. 좋게 말해 벤치마킹이다. 경리단길이 유명해지고 나서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원래 있던 가게가 다 쫓겨나고 폐허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외면하는 걸까. 하지만 공무원도 바보는 아니다. 대안이 없는 거다.
경리단길은 실패한 모델이다. 원래 입소문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유명해진 거리였다. 미군이 많아서 이국적인 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았다. 매출이 늘고 언론에 노출되자 건물주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 어느날 임대로를 세 배 이상으로 늘렸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린 거다. 이후 조금씩 허물어지던 상권은 코로나를 만나서는 완전히 죽어버렸다. 서울에도 망리단길, 송리단길 비슷한 길이 많고, 부산, 경주, 광주 그리고 김해까지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ㅡ리단길 이라 부르는 길을 조성했다.
그러니까 봉리단길, 이런 이름은 집어치우자. 심지어 대구에 동명의 길이 있어서 헷갈린다. 대신에 고양이 낙원이 근처에 있으니 냥이단길로 바꾸자. (?)
나도 별 수 없다. 그냥 봉리단길로 하자.
이름 | 봉리단길 위치 | 김해대로 2273번길 교통 | 봉황대역 근처. 김해여객터미널 근처. 주차 | 작은 공용주차장. 유료주차장 있음.
나는 운전해서 왔는데, 지하철이 더 좋아보인다. 평일에는 공용주차장,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주변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한다. 가격은 저렴하다. 공용주차장 옆은 일반주택이었는데, 꽃이 너무 이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 찍었다. 여기 집주인은 정원을 가꾼다고 어디서 돈 한푼 받는 것도 아닌데, 여기 정원 덕분에 봉리단길 분위기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좋은 외부효과다. 공식적으로는 다양한 가게들이 모인 거리를 표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중간중간 만나는 정원이나 꽃, 나무들이 더 좋았다.
김해 사는 지인에게 맛집을 물어보니 바로 봉리단길을 추천했다. 나는 반대로 갑오삼계탕을 추천했다.
걷다보니 이쁜 카페와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100년된 정미소에서 피자 파는 가게. 합정에 있을 법한 우동가게. 이태원에서 본듯한 타코 가게. 서울 서촌에서 본 듯한 사진관. 가로수길에 있을 법한 의류매장. 그리고 큰 규모의 카페도 많았다. 소품샵도 보인다. 한번씩 가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조금 더 걸으면 오래된 거리가 나타난다. 오토바이 가게, 미용실, 비디오 가게 등 오래된 가게들이 봉리단길을 둘러싸고 있다.
특이한 건 종이를 판매하는 상점이다. 물에 안 젖는 종이, 돌로 만든 종이, 친환경 대나무 종이, 꽃 질감이 나는 종이 등이 비치되어있다. 봉황동을 주제로 한 작품도 판다. 탐조가, 소설가, 웹툰작가들과 작품을 만들었는데, 냉장서고 mopo 작가의 작품도 있었다. 2층 공간도 있는데, 1층에서 종이를 구매하면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공간이다. 종이를 파는데, 심지어 봉황동을 주제로한 작품이라니.
상호 | WIYP 종이상점 위치 | 김해시 회현동 118-20 특징 | #봉황역3번출구 #종이노트 #로컬상점
WIYP는 What Is Your Page 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페이지도, 봉황동이 담긴 페이지도 여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많이 걸었다. 다리가 아프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항상 차로 다니다 보니 이렇게 오래 걸을 일이 별로 없다. 샤워하고 쉬면서 박준을 읽었다.
제목 | #운다고달라지는일은아무것도없겠지만 저자 | 박준 @joon1015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