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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머신

가난을 구경하는 느낌

_안온 「일인칭 가난」

by 이태원댄싱머신

저자는 스무해 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이후에는 사교육에 종사하며 조금 덜 가난하게 살았다. 저자의 처절한 고백을 보고 있자면, 남의 가난을 구경하는 느낌이 약간 든다. 타자에 의한 가난 전시는 아니어서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연기는 끝날 줄 몰랐다. 무엇에 눌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주눅 들지 않으려고 이런 말, 저런 제스처를 꾸며냈다. 만사에 무관심하게 굴면 차라리 가난한 티가 덜 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세상 쿨한 연기자가 되었다. 나는 가난도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애쓰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66p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에 진학하며 항상 재미만 좇아살아왔던 나는, 마흔이 넘어 가난이 무엇인지 책으로 배운다. 이 또한 유려한 문체로 쓰여있어서인지 아름답고 고귀하다. 원래 가난이 이럴리 없지만, 다 저자가 글을 잘 쓰는 탓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궁할지언정 자존심을 팔 수 없었다. 그때 내가 가진 것이라곤 기숙사에 있는 이불 한 채와 그 이불 아래에 늘 소중히 두고 나오는 자존심뿐이었다. 들고 다니면 쉬이 오염되고 찢어지고 해지는 자존심. 나는 매일 밤 누워 이불 속에서 새근새근 잠든 자존심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묻혀 온 때가 묻진 않았는지, 밖에서 내가 한 짓을 알고 스스로 깨져버리지는 않았는지. 44p


지금 나는 서점을 하고 출판사를 하며 자본과 멀리 떨어진 자본주의를 살아내고 있다. 모두의 고난이 다 다르게 생긴 것처럼, 각자의 가난도 다른 모양일 거다. 딱히 남의 가난을 궁금해본 적은 없다. 내 통장 잔액은 스스로 선택한 숫자니 뭐라 할 것도 없으나, 태어난 순간 양손에 주어진 가난을 펴보는 사람의 심정은 다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가난은 이유 없는 벌이다.


나는 가난한 내 삶은 지독하게 원망했다. 왜 하필 이런 가족일까, 왜 하필 이런 방구석일까, 왜 하필 딸일까, 왜 하칠 1997년에 태어났을까, 왜 하필 부산이었을까, 왜 하필 나일까. 왜, 도대체 내가 왜, 가난을 베개로 베고 비참함을 이불로 덮어야 할까. 가난은 이유 없는 벌이다. 69p


작가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보면, 새삼 삶에 관대해진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이건 다 평균적이고 중간적인 삶의 궤적을 그릴 거라는 착각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정말 삶에 평균이라는 게 있을까. 중간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이 많다. 그 또한 삶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책을 쓰고 팔고 사는데,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 더 쓰이고 더 팔려야 할 것은 가난이다. 10p
나의 가난이 과거형이 된다 해도 우리의 가난은 진행형이기에, 이 책은 일인칭으로 쓰였으나 일인분짜리는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썼다. 10p


요즘 점심을 삼각김밥으로 간단히 때우는 경우가 많다. 뭐 바쁘기도 하고 돈도 아쉽다. 서점도 하도 출판사도 하고 고양이도 기르는 집사로서, 이정도 궤적을 그린다고 호들갑 떨 건 없다.


언젠가 열음이 말했다. 언니,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 마치 전쟁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난을 수군거리며 서로를 껴안는다. 87p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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