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Jul 08. 2019

내가 식인종이라니

「뉴필로소퍼 2018 2호 _상품화된 세계 속의 인간」

나는 잡지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좋아했었다. 중학교 때 게임 잡지를 사모았고, 대학교 때는 시사주간지를 읽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


나는 읽는 것보다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독립잡지를 훑어보며, 어떤 잡지를 수집할까 고민하던 중 눈에 띄는 잡지가 뉴필로소퍼였다.



이 잡지를 처음 접한 건, 내가 신처럼 떠받드는 동민님의 독서리뷰를 통해서였다. 이쁜 형광색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으신 것을 보고, 나도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했다.


이 잡지를 여러 권 구매했지만, 그 중 처음으로 읽은 게, 바로 지금 소개할 '상품화된 세계 속의 인간'이다. 소비와 수집이 취미이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도대체 이 책은 나의 이 수집욕에 대해서 얼마나 대단한 통찰을 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간 실망이었다. 상품, 마케팅, 자본주의, 유한계급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로 구성이 되어있다. 그런데 그중 많은 부분이 '소비를 통해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고리타분한 클리셰였고, 소비와 관련한 개인적인 에세이글도 재미없었다.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았던 부분이 있었기에, 몇가지 소개한다.



_브랜드


현대인에게 브랜드는 토템과 같다는 표현이 재미있었다. 최태섭이라는 한국인 저자의 글이다. 그 귀하다는 남성페미니스트다. 원래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에 대한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사회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상품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의 체계 속에서 내가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에 집중된다. 현대인들은 바람과 태양과 곰 대신에 각종 상표와 브랜드를 토템으로 모시는 취향과 소비의 부족을 만들어 냈다. 또 식인종들이 그러했듯이, 상품을 소유하는 것으로 그 상품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소유는 활용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당신을 '몸짱'으로 만들어 준다는 운동 기구가 어떤 우주적 프로세스를 거쳐 빨래걸이가 되어도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더 새롭고, 더 간편하고, 더 효과적인 새로운 운동 기구가 존재할 것이기에. 그리고 그것만 있으면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몸을 금방 가질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있을 나에게 딱 맞는 상품을 사는 것이다.


정말 글 재미있게 쓰는 것 같다. 식인종이라니ㅋ



_2개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8년에 미국 대중에게 '풍족한 생활'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 그는 사람들에게 자동차, 텔레비전, 해외여행, 수영장, 별장과 같이 돈이 많이 드는 24개의 목록이 적힌 카드를 주었다. ... 이때 이스털린은 응답자들에게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도 따로 체크하게 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94년에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을 조사했는데 ...


결론은 왠지 예상이 간다. 반전은 없다. 1978년에 조사한 바를 보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7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려면 4.4개가 필요했다. 1994년에는 평균 3.1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풍족한 생활의 조건으로 5.6개를 골랐다.


다시 말해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간절하게 가지고 싶은 것의 격차는 여전히 2.5개였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2.5개가 부족했고, 이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나는 고급승용차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능력자에게 장가를 간다면, 바로 장바구니에 담을 것이다. 가질 수 있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지만, 가지고 싶은 것들은, 아니 내 욕망은 더 부지런하다.



_붓다


무소유 따위 종량제 봉투에 쳐넣을 수 있는 글이 나왔다. 뭔가 글이 좋다 싶었는데, 역시 한국인 저자의 글이다. 외국 잡지이고 저자들의 절대다수가 외국인인데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글들은 전부 한국인 저자의 글이니, 역시 나는 애국자다. 꽤 오래전부터 종종 이름을 들었는데, 그는 박사다. 흔치 않은 이름을 가진 그는, 이름만큼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바로 북 칼럼니스트다. 칼럼도 많이 쓰고 방송에도 많이 나왔다. 하루에 2권 정도 읽는다고 한다. 좋아하는 책으로 먹고 살려면 그정도는 읽어야 하나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ㅠ 이 글도 서평이다. 「무소유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라는 이름의 책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소유는 출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르침이고, 우리 같은 세속인, 즉 재가자(출가하지 않고 불교를 믿는 사람을 말한다.)들에게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붓다는 중생들에게 성공하고 부자가 되라고 가르쳤다. "모을 수 있는 한 많은 재물을 모으라"고 가르쳤다. 붓다의 제자이자 후원자 중에는 엄청난 부자들도 많았는데, 붓다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물을 더 많이 모으고 관리할 수 있는지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치고 조언했다. ... 그 속에서 붓다가 선택한 것은 부를 축적하면서 생기는 속세의 행복을 인정하고 독려하는 것이었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계율을 지켜 모을 것, 그리고 축적한 재화를 올바르게 사용할 것. 그는 돈을 모으는 과정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빤한 설교를 넘어, 구체적인 방법을 차근차근 가르쳤다. ... 붓다는 집안의 하인을 대할 때도 도리를 지킬 것을 당부했다. "힘과 능력에 맞는 일을 맡겨라. 합당한 임금을 지급하고, 병들면 치료해주고, 좋은 음식을 제공하며, 제때에 일손을 놓을 수 있도록 하라." '칼퇴근'에 의료보험, 복지까지 섬세히 짚는 시선은 현대 사회에 비교해 보더라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재물을 더 많이 모으자. 법륜 스님의 책도, 혜민 스님의 책도 마구 사들이자.



_장난감


마지막으로 장난감과 관련한 단상이다.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하기 쉽지는 않지만, 육아는 분명 많은 희생을 동반할 것이다. TV를 끄고 아이와 놀아주려면 내 시간. 무엇보다 중요한, 내 시간이 없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뽀로를 틀어주고 샤크송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에게는 이 사람들이, '편한 길을 가기 위한 쉬운 선택을 했다'는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 소개할 글의 저자는, 아주 감탄할 만한 분석을 내린다. 개리 크로스라는 문화사학자다.


 이제는 어른들이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선물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어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 보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유익한' 선물을 줌으로써 아이들의 발달 과정 형성을 돕겠다는, 한때 품었던 고상한 목적을 포기한 듯하다. 그보다는 선물을 통해 어른들의 손으로는 거의 통제할 수 없거나 어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소비·미디어 기반의 또래 문화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아동 판타지 산업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어린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자녀의 앞날을 안내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잃었다는 사실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야... 맞는 말이다. 이제는 어른들의 말이 길잡이로서의 위치를 잃은 시대가 되었다. '요즘엔 안 그래요. 시대가 바뀌었어요.' 라는 문장은 만능키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에도, 게임 좀 그만 하라는 말에도, 유투브 동영상 그만 보라는 잔소리에 활용이 가능하다.


마흔이 다 되어가고, 언젠가 아빠가 될거다. 그때 어른인 척 하며, 아이에게 유투브를 추천하면, 아이는 뭐라 말할까.


"아빠, 나는 아날로그 싫어해. 요즘엔 그런거 안봐."


벌써부터 시무룩해진다.


이 잡지에서, 이렇게 총 4가지를 소개했다. 정말 재미있는 글이 많은데 이렇게만 소개합니다... 가 아니라, 정말 이게 다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더이상 재미있는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섣불리 샀다가 후회할지 모르니, 나처럼 책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분들은 사보시라.


★★ 기대가 너무 컸나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감이라는 아령이 날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