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가 끼닛거리

by 이태원댄싱머신
소서(小暑)

공동변소같이 문짝이 다닥다닥 붙은 집에 방을 얻어 여름을 났다 해가 지면 쪽창 거미줄에 맺히는 음표들을 쇠추 달린 대저울로 달아서 치부책에 적듯 시간이 지져댄 오돌토돌한 흉터들을 곰곰이 만져보기도 했다

못통을 찬 아버지는 민사재판에 이겼어도 갠 날이 없고 밥티 묻은 가지를 깨소금장에 무친 걸 좋아했다. 은행원들에게 점심장사라도 허닝게 밥 먹는 줄 알라고 아머닌 자주 오남매 입을 막았다 밤인 줄도 모르고 참매미 소리를 멀건 감자국같이 흘러넘치고 내일까지 수업료 안 내면 제적이래요, 제적 이러면서 동생들 목소리도 흘러넘치고 공사장에서 철근을 멨던 내 몸엔 땀띠가 올랐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처럼 몸 아무데서나 톡톡 쏘는 땀띠를, 기왓장 조각으로 긁어댔던 밤들을 닭 모가지처럼 확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때론 흉터가 끼닛거리였다고 공동변소 같았던 날들을 돌아누워도 마음속 꽃눈 틔우다 덜 탄 토막들이 서걱거리며 별처럼 반짝였다

_이병초 「까치독사」


뭐랄까. 흉터는 과연 구시대의 주식이다. 상처 없이 지나가는 날은 밥 안먹은 것처럼 허전했다는, 산업화세대 어른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반면 지금 우리의 주식은 스트레스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 드립에 대꾸하기 민망할 정도로 몸은 편하다. 대신 스트레스가 많다. 엑셀, 워드, 피피티를 보면서, 눈이 빠져라 일한다. 그냥 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려고 한다. 마치 내가 회사의 주인이라도 된냥.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고 책도 읽는다. 마치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이라도 할 수 있는냥.


우걱우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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