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인 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자려고 하면 한 명이 깨고, 자려고 하면 기저귀가 빵빵해서 교체해줘야 하고, 자려고 하면 쭈쭈달라고 해서 수유해야 하고,자려고 하면 엄마가 옆에 없다고 엄마 찾아 자리 옮기는 아이 달래줘야 하고, 날 추운 날 이불을 차 버리며 자는 세 아이 이불을 덮어줘야 하고, 이불 덮어주는 게 피곤해서 수면조끼 입혀놨더니 입고 있던 내복까지 벗은 채 잠들어서 벗은 내복 찾아 입혀주고, 기저귀 떼기 성공해서 팬티 입히고 한참 잘 자다가 실수로 소변을 보는 바람에 이불에 지도 그려한밤중에 이불 정돈에, 경우에 따라 부랴부랴 이불빨래 하고,감기에 걸린 아이는 낮에 괜찮은듯하다가 꼭 한밤중에 열이 40도로 올라 부랴부랴 해열제 꺼내먹여 비상체제를 가동시키고.. 이게 어디 사람답게 자는 건가? 정말 고문이 따로 없다.
밤에 잠을 못 자니, 잘 수 있을 때 최대한 자야지~라고 온갖 핑계를 댔다.그렇게 나는 합리화하는 사람이었고잠을 '목숨걸고' 자고야마는사람이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밤에 잘 자야 낮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아이 돌보는 게 보통 체력 소모되는 게 아니기에 엄마는 잘 자야한다. 엄마의 컨디션 여하에 따라 그날 하루 아이들과의 관계가 사랑이 가득할지, 짜증과 분노가 가득할지가 좌우된다.
그러나 동시에.. 핑계다..
피곤해도 하면 할 수 있다.힘들지만 내가 안고 갈 수 있는 부분인 거다.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내겐 피해의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나란 사람이 원래 7시간을 자야 이상적인 생체리듬을 갖는데, 육아와 출산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무너졌으니..특히 푹.잠.수면권이 보장되지 않으니.. 늘 억울했다.아이들이 잘 때, 난 최대한 자야만 했다.잘 수 있을 때 누려야만 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마음 한 켠에 담아두었다.
담고, 담고, 또 담았다. 말씀이.. 쌓였나보다.
어느날, 종교모임의 리더를 맡게 되었다. 난 그 일을 책임감있게 해내고 싶었다. 리더이기에 뭔가 책임감을 갖고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난 '기꺼이' 잠을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 말씀은'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지금 난 새벽 4시 기상 중이다. 물론 전날 아이들로 하여금 너무 늦게 잠들거나 집에 손님이 오는 등 상황에 따라 시간을 조절하고있다. 그러나 웬만하면 새벽기상을 실천한다. 그렇기에 세 아이 코로나 육아를 하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남편을 도와 일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에..
5분만.. 아니 1분만 더 자고 싶어할 때보다
다양한, 생산적인 일들을 해내고 있다.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자. 지금 당장 눈 앞에 변화가 없어보이더라도 계속 투자하자. 바로 내게 말이다. 운동이든, 공부든, 취미로든 무슨 형태로든 말이다.
난 이제 더 이상 빈궁하게 될까 두려워하지도, 양식이 떨어질까 불안하지도 않다. 평안하다. 잠자기를 좋아함이 아닌 깨어있음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중요하다. 깨어있음이 단지 육체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마음가짐, 정신머리까지도 같이 깨어야 한다. 몸이 움직였으니 마음과 생각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 언젠간.. 소위 말하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 법이니까(1만 시간의 법칙도 있지 않은가). 내가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물론 그때가 언제가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