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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돌려주세요

by 아시시
앉으시면 안 돼요
오래 머물면 안 돼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과연

사서 선생님이 도서관을 찾은 이들에게 할 말이었을까?


빌 게이츠는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 준 것은 바로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이왕 크고 책이 많이 소장되면 좋겠지만, 사실 도서관의 규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마음껏 읽을 책이 쌓여있는 곳이면 어디든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꼭 빌 게이츠 때문은 아니지만, 나와 우리 아이들은 도서관을 좋아한다. 방대한 양의 책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관심 분야책의 종류가 다양하기에, 읽기의 즐거움과 몰입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와 아이들은 평소 도서관 찾기를 즐겼으나 셋째가 한참 어렸기에(두 돌 전) 세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려면, 그만큼 주위 사람들 눈치를 봐야 했다.

첫째는 책 읽기를 독립하여 혼자 이 책 저 책을 보느라 바쁘다. 둘째는 아직 엄마가 한참 책을 읽어줘야 하기 때문에 엄마 옆에 책을 쌓아놓고 기다리기 일쑤다.


문제는 셋째다. 돌이 지난 셋째는 아직 모든 것이 자기 세상, 자기중심적이라,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고, 마음껏 칭얼대고, 수시로 뛰어다닌다. 물론 셋째를 생각하면, 또 도서관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도서관이 아닌 공원, 놀이터를 찾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아이 키워본 사람은 다들 그렇듯, 큰애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 딴에 전략을 세운 것이, '셋째 낮잠 시간에 맞춰 도서관을 찾자!'였다. 셋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두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면 대개는 도서관 도착할 즈음 잠들어 있다. 그럼, 첫째는 원하는 만큼 책을 볼 수 있고, 둘째는 엄마와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나의 큰 그림 안에서다.


행여나.. 첫째가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린다거나, 셋째가 이를 악물고 버티는 날엔 말짱 도루묵이다. 둘째는 책을 읽어달라고 이 책, 저 책을 들고 나타난다. 셋째의 경우, 사람들은 있지, 졸리기는 하지, 볼 게 많아 잠은 안 자고 싶지.. 그럴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은 '땡깡'이다. 이런 초유의 사태를 대비해, 아기 엄마들은 가방이 '간식'으로 무장되어 있다. 특히, 뽀땡 비타민은 필수다. 허나, 실수로 간식을 깜박했다거나, 준비한 간식들마저 안 통할 때가 있다. 정말 난감해진다. 둘째 책 읽기 중단의 연속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변 사람들의 온갖 눈총은 다 받아야 했다. 특히, 꼬맹이들의 눈총이 제일 따갑다.

"여기에서 뭐 먹으면 안 되는대요!", "어휴~!"

그럼 난 속으로 말한다.

'얘들아.. 나도 알거든! 나도 지금 난감하거든!!'





셋째 아이도 함께 부담 없이 갈만한 도서관을 찾아야 했다. 막내가 크길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막내로 인해 첫째와 둘째가 누리지 못한 희생이 이미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실컷 놀기, 셋째의 수유로 큰 아이들과 분리되기, 스킨쉽을 원하지만 분리되기, 무엇보다 출산 그리고 산후조리 기간동안 강제 이별하기 등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주말에 남편의 도움을 받아 도서관에 가면 참 좋을텐데 양가 형제가 많은 우리는, 스케줄이 많아 이것마저도 힘들었다.


그렇게 도서관을 찾아 전전긍긍하다가 드디어 동네의, 작은 도서관을 알게 되었다. 일반 가정집(상가건물 빌라 2층, 3층)을 개조해서 도서관 허가를 받은 곳이었기에, 막내의 기저귀를 갈기도 부담이 없었고, 한참 떠드는 아가도 부담 없이 데리고 갈만한 곳으로 적합했다. 무엇보다 찾는 이가 많지 않기에 마음이 편했다. 도서관 분위기가, 마치 친정집에 세아이를 데리고 간 것 같은.. 그런 따스한 느낌마저 있었다.

또한,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지기 시작한 내가 원하는, 독서모임도 진행하고 있었기에 난 더욱 '작은 도서관'에 끌렸다. 그렇게 2주일 정도 드나들었을까.


코로나로 하여금 모든 것이 셧다운 되기 시작했다. 혹은 부분 개방을 했을 때에도, 작은 공간에 우리가 들어감으로 인해 혹시나 민폐를 끼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하여 그곳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렇게 일 년.. 아이들은 제법 커서, 7살이 된 둘째도 스스로 책을 읽고 3돌을 앞둔 셋째도 책을 한번 읽으면 끝장을 보려 한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강산이 변하듯 다리 한 뼘이 길어지고 외모도 더욱 형아스러워졌으며 마냥 어린아이 같았던 둘째가 벌써 이를 뽑아, 웃으면 입안에 까만 구멍이 보인다.

이렇게 아이들은 하루하루 크고 성장해 가는데 도서관은 한결같다.


착석 금지


오래 머물수록 즐겁고 재미있어야 하는 도서관에서 빨리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그 와중에 책을 열심히 붙들고 놓지 않는 우리 첫째는 다리가 어지간히 아플 텐데 꿋꿋이 서서, 혹은 쭈그려 앉아서 책을 본다. 기다리는 나와 성격 급한 두 동생들만 힘들다.


'착석 금지'.. 그리고 켜켜이 쌓여있는 의자가 흉물스럽게마저 느껴지는 도서관은,

대체 언제까지 잠시 머물러야 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릴까..


또, 착석 금지가 '해제'되더라도 예전과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도서관을 찾을 그 날과 그 때가 오기는 할까?

차라리 우리집 거실을 도서관으로 만드는 게 빠를 수도 있겠다.

속히,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 '빌리고', '머무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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