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을 전공해서 몬테소리 교육이 아이에게 주는 영향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비싼 몬테소리 교구만이 다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휴지로 코 풀기, 사용한 물건 제자리에 정리하기, 옷 스스로 벗고 개기, 수저 바르게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다 산교육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하지 않았던 걸까?
코로나 이전에는 엄마인 내가 집안 정리를 도맡았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게 싫었고, 잔소리하느라 힘 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들이 하고 나면 내 손이 또 가야하니 두배 세배로 일하고 싶지 않았다. 단풍잎처럼 작은 손으로 어설프게 하면, 완성도 있는데 의의가 있는 게 아닌, 경험 자체가 칭찬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진이 빠졌다. 1,4,7살. 세 아이 모두 엄마 껌딱지였고, 엄마가 해 주는 걸 좋아했기에 혼자서 밥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빨래 개고 청소하고 정리를 했다. 7살 정도면 충분히 교육이 가능했고 4살은 가르치기 좋은 시기이다. 그러나 1살짜리 동생을 수유하고, 울면 달래고, 기저귀 갈고 응까 하면 씻기기를 반복하면, 난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는 걸 생각하기 앞서 자연스레 ‘방목’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기간이 길어지면서 ‘방목’의 괴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일부 영역은 오히려 편의를 봤지만, 일부 영역은 날이 갈수록 해결이 안 났다. 바로 ‘정리’ 부분이 그렇다. 엄마가 정리를 해 왔는데, 코로나 기간이 길어지면서 엄마의 할 일이 확대되다 보니 손을 놓게 되는 영역이 바로 ‘정리’였다.
처음에는 레고가 밟히고, 그다음엔 종이가, 옷이 밟히더니 어느 순간 팬티, 가방까지 밟히다 못해 산을 이루었다. 방 하나에서 시작해 집 안 곳곳은 남산, 북한산, 가야산, 대둔산까지 장관을 이루었다. 남편은 결국 폭발했고, 첫째 아이에게 온갖 폭언을 쏟아부었다. 딸아이는 서러워서 말도 못 내뱉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때부터 ‘정리’에 대한 숙제가 내게 큰 산으로 주어졌다. ‘어떻게 하면 정리를 잘하게 할 수 있을까?’ 쿠폰도 써 봤고, 용돈도 줘 봤다. 하루에 몇 개씩 정리도 시켜봤고, 혼내거나 협박도 해 봤다.
내적 동기가 있어야 움직이는 첫째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습관에 대한 인식과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드디어 ‘정리’에 대한 인식도 잡히고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으로 나름의 정리 노하우가 생겼다.
얘들아, 거실 복도와 식탁아래 두 곳을 정리해야 하는데, 누가 맡을래?
예전 같았으면, 이걸 어떻게 하냐며 온갖 불만과 투정을 늘어놓았을 텐데, 요즘엔 “저요!”라고 말하며 이건 문제가 아니라며 손쉽게 정리하고 제 할 일을 하는 아이들이다. 덕분에 혼자 독점 집안일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조금씩 몸을 사리며 지내기 시작했다.
‘정리를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정리가 과연 습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보내던 시기가 있었는데, 정답은 ‘있다’. 정리를 시키지만 실패가 이어지는 이유는, 1) 아이 능력 밖의 무리한 양의 정리를 시켰기 때문이고 2) 꾸준히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도, 수험생들의 공부비법도,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도 모두 ‘꾸준히’ 무언가를 해 왔음에 그 비결이 있다. 아이들의 정리도 마찬가지다. 꾸준하게 정리를 시키되,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정리할 것들을 알려주고 조금씩 그 양을 늘려가면 어느 순간 정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도, 외출 후 집에 돌아와서도 집 안 바닥을 볼 수 없이 곳곳에 물건이 쌓여있었다. 과거형이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환한 거실 바닥과 정돈된 아이들 방을 볼 수 있다. 아무 때나 먼지를 털어내고 수시로 청소기 돌리며 물걸레 돌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한여름에 계곡물에 시원하게 발 담그고 쉬듯 마음마저 상쾌하다.
엄마가 해 주는 것은 모두 그때뿐이다. 엄마의 에너지만 갉아먹을 뿐이다. 심지어 아이들의 습관 형성에도 좋지 않다. 공간이 아무리 깨끗해도 공간을 쓰는 사람들이 정리에 대한 인식이 없고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그 공간은 정리 전의 상태로 순식간에 돌아간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집을 정리하기 앞서 아이들이 정리 습관을 즐기고 당연시 여기도록 도와주자. 아이들은 스스로 정리를 함으로써 성취감, 청결감을 느끼는 만족도에서 나아가 자존감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더불어, 엄마는 에너지가 분산되어 양질의 에너지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엄마의 에너지가 분산되어야 엄마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엄마만의 시간을 가져야 엄마가 행복하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