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에게 필요한 부모
나는, 우리 부부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었을까? 각자 큰그림을 그려보기는 한 걸까? 우리 가정의 경우, 허니문 베이비를 낳은 ‘준비없이 부모가 된’ 경우였기에 특별히 부모로서 어떤 그림을 그린 적은 없다. 막연하게 ‘좋은 부모’, ‘친구같이 편한 부모’, ‘아이가 다가오고 싶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의 유년기에 대한 웃음지을 일, 아쉬운 일이 바탕이 되어 그런 육아관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11년째다. 아이들에게 아빠란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는’ 존재가 된 사실이. 아빠의 마음이야, 해가 지구를 바라듯 늘 아이들을 향해 뜨겁다. 여기에서 정서적 괴리감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곁에는 늘 ‘엄마’만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장난치려고 다가오는 아빠를 괴물이라며 오지말라고 소리치고, 사랑의 종지부를 찍는 뽀뽀를 금지시켰을까.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일 하는 사람’, ‘돈 버는 사람’, ‘가끔 맛있는 걸 사 주는 사람’, ‘생일날 장난감을 사 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연히 만난 한 지인이 말했다. “난 돈버느라 바빴어요. 25살에 결혼해서 정말 열심히 살았지. 너무 열심히 돈을 벌어서 애들 얼굴은 본 기억도 없어요. 그랬더니 딸아이가 사춘기 들어서 반항이 심하더라고. 15일 동안 가출해있는데, 애가 키는 크지 외모도 성숙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매일같이 기도하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젊어서 돈 번다고 아이랑 함께한 시간이 없었던 거야. 그제서 내가 며칠을 회개하고 아이를 찾고나서 말했어.. 미안하다고, 아빠가 정말 잘못했다고..”
남편은 퇴사 후,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시 바빠졌다. 이럴거면 차라리 이전의 회사로 - 안부를 핑계로 남편에게 러브콜을 종종 보낸다 - 돌아가는 게 나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의 근황은, 눈뜨자 마자 컴퓨터를 켜서 일을 하고 낮엔 더 열심히 하고, 저녁에도 일하고 아이들과의 대화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일과 관련하여 컴퓨터 아니면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일을 할수록 이런 남편의 모습은 나날이 더해갔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지, 열심히 일해도 그만큼의 댓가를 바라기 어려운데.’ 라는 생각을 애써 해가며 나의 눈살은 한없이 찌푸려졌다. 부부는 한 몸이라고 했던가, 이런 내 생각이 남편에게도 통했나보다.
“나, 이제 집에서 최대한 일은 안 하려고.
아이들이 잠들면 일할지언정
아이들 앞에서는 가능하면 함께 시간을 보낼거야.”
사춘기 아이에게 중년이 된 아버지가 사과를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제서야, 막힌 담이 서서히 무너지듯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부드러워져갔다. 아이가 원했던 것은, 돈 잘 버는 부모가 아니었다. 단지, 함께 웃고 놀아주고 이야기나누는 부모가 필요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한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이 시기를, 훗날 잘 흘려보냈노라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꼭 매일매일 많은 시간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단 5분이라도 혹은 주말 만이라도 눈을 마주치고 가족만의 온정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라본다.
[ 한 달에 한 책 읽기 모집 중 ]
https://brunch.co.kr/@joyinuoo/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