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언젠간 친구들처럼
유치원 끝나는 시간까지 있다 올게,
기다려줘~
잠시 당황했습니다. 요즘 필자의 고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을 그만둔 둘째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는 유치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유치원이라는 곳이 단순히 교육을 넘어서 또래끼리 함께 살을 맞대고 어울리며 사회성을 배워가는 곳인데, 접촉 차단 및 거리 유지 등의 이유로 과연 유치원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성이라면 세 아이가 함께 있으니 그걸로도 충분했고요. 무엇보다 코로나의 불안으로부터 배제할 수 있었고, 유치원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지낼 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러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치원에 안 가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동네 산책으로 건강도 챙기고 가족끼리 친밀감도 더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본격적인 가정보육이 시작되면서, 사전에 약속한 ‘매일 산책하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이좋은 첫째 둘째의 연이은 집콕으로 아이의 건강마저 걱정이 되었습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1층(하루 중 2시간만 햇빛이 들어옵니다)에서 사니 더 그럴 수밖에요. 얼마나 집에서 앉아서만 놀았냐면, 두 아이의 새로 산 내복 4벌의 양쪽 무릎에 모두 구멍이 났더라고요. 주로 앉아서 놀고, 이동도 무릎으로 겨우 했으니까요. 기가 막혔습니다.
햇빛이 차단된 생활과 더불어 움직임 없이 노는 아이들의 건강에 신경이 안 갈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이를 유치원에 '다시' 보내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다시 찾은 유치원, 매일 한 시간
집에서의 생활에 적응이 되고, 무엇보다 학교 안 가는 누나랑 더 놀고 싶은 마음에 둘째는 유치원을 거부했습니다. 유치원에 안 가겠다는 아이에게 조건을 내민 것이, 밥은 먹지 말고 한 시간만 있다가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코로나가 수도권 지역에 심했을 때, 유치원에서 그렇게 권고했어요. 원격수업 내지는 일찍 하원 하는 것을. 등원하더라도 전체 원아의 1/3 정도만 하는 것으로요. 그마저도 워킹맘들 위주로 진행되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시기 즈음 대기 걸어놓은 유치원에서 등원하라는 안내를 받았고 그렇게 시작된 유치원에서의 ‘한 시간 생활’이 아이는 좋았던 모양입니다. 유치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한 지 5개월째, 등원한 지 한 시간 만에 하원 중입니다. 지금은 코로나 단계가 완화되면서 모든 아이가 제 시간(오후 3시 반)에 귀가한다. 종일반은 더 늦을 테고. 우리 아이만 잠시 있다가 오는 겁니다, 여전히.
요즘 밖에 나가 자고 하면 잘 나가니까 한 시간.. 있을 바에야 다시 그만둘까? 언제쯤 다른 아이들처럼 제시간에 오려나?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했습니다. 원래 저란 사람이 100퍼센트의 확신이 있지 않는 이상 늘 고민하고.. 우유부단하거든요.
그. 런. 데!
"기다려달라니..."
마치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았습니다.
기다려주기
제 주특기는 기다려주기입니다.
옆에서 답답해할 정도로 잘 기다려주지요.
세 아이를 도서관에 데려가면 왕복 4시간이 걸립니다. 도서관이 멀리 있기 때문은 아니에요. 참고로 도서관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산책하기 적당한 거리에 있다는 뜻이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첫째에게 있습니다. 둘째, 셋째는 서가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가져옵니다. 빌릴 수 있는 최대 권수에 맞춰 들고 나오기 급급하지요.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딸아이는 꽤나 신중합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고른 책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 책을 보고 저 책을 봅니다. 훑는 정도가 아니라 책을 다 읽습니다. 그중에 재미있는 책 몇 권을 고른다. 집에 옵니다. 둘째, 셋째는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책은 뒷전이고 노느라 바쁩니다. 첫째는 자신이 열심히 고른 책에 애정을 갖고 읽고 읽고 또 읽습니다. 아이가 책을 열심히 보고 있으면 엄마 마음은 참 행복해집니다.
아직도 안 고르고 뭐했냐며 아이를 보채는 엄마도 있을 겁니다. 약속이 있거나 다음 일정이 있으면 속 터질 상황이죠. 하지만 지금 저 아이는 긴 시간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책을 고름으로써 판단력이 자라나고 책과 더 친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시간을 깨면, 아이의 내적 성장하는 것을 엄마가 방해해버린 꼴이 되어버립니다.
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잡초, 나무, 벌레 등에 관심을 갖고 보고 있으면 필자는 가던 길을 멈춥니다. 대부분은 급할 일이 없기에 마냥 기다려줍니다. 엄마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시간이죠.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고 질문을 던지며 관찰력과 추리력, 상상력 등이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저도 아이만큼이나 느린 사람이라 가능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필자는 보챌 상황을 만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바쁜 스케줄 속에 이동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하는 일정은 늘 여유롭습니다. 무계획 속에 아이가 이끌어가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거지요. 그럼 아이는 아이대로 충분히 즐겨서 좋고 엄마는 엄마대로 일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습니다.
아이에게 배우는 엄마
둘째 아이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여전히 혼자 일찍 오고 있고, 유치원에 다니기로 한 이상 다른 아이들처럼 정규 하원 시간에 와야 한다는 것을. 유치원을 그만두고 반년의 기간 동안 집에서의 생활에 너무 적응이 되어 다시 유치원을 찾기에 자신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유치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지만 집에 있는 엄마와 누나, 동생 생각에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오고 싶어 하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여섯 살임을.
사실, 아이가 유치원에 제시간만 있다가 와도 엄마는 꽤 편합니다. 물론 보내고 나서도 바쁜 일상들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것보다는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편이 최소한 '숨통'은 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등 떠밀어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라는 끝나지 않을 이 특별한 시국에, 마스크를 쓴 채 6시간을 있어야 할 아이가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죠. 굳이 이 어린 나이에 그렇게 힘든 생활에 적응시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킹맘도 아닌 전업주부인 내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기다려달라는 말을 들으니, 더더욱 기다려주고 싶어 졌습니다.
설사, 이대로 쭉 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유치원이 어차피 의무교육은 아니니까요.
계획대로였다면 첫째, 셋째와 함께 둘째의 유치원 하굣길을 동행하여 다 같이 산책하고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예상치 못 하게.. 둘만의 데이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아이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를 통해 너무 중요한 사실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보통은 부모가 평소에 한 말들이 아이들 입을 통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아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엄마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늘 가득한 생각이었지만 아이를 통해 들으니 더욱 새로웠습니다. 전혀 꾸밈없는, 오롯이 아이가 느끼는 순수한 감정과 생각이기에 더욱 그 의미와 가치가 있었지요. 기다려달라는 아이의 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부모이기에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눈과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자녀에게 배울 것 투성이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세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경청하세요. 진정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말할 때, 그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아이의 원하는 바를 마음에 새겨보세요. 그래야 아이도 부모도 행복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