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축복해 고마워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 너무 쉬운 일이죠. 하지만 과연 아이도 엄마의 사랑을 느낄까요?
너무 어렸을 때에는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워낙에 사랑을 말로 표현하고 스킨쉽이 잦으니까요. 하지만 유치원.. 학교..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면서, 엄마의 욕심이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는 서서히 부모를 밀어냅니다. 아이가 커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엄마와의 관계도 크게 관여하죠. 해도해도 부족한 애정표현을 어느 순간부터는 징그럽다며 밀어내거나, 다 알거라며 잘 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사랑의 언어로 마음 읽어주기 입니다. 흔히 말하는 공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참고로 필자의 세 아이는 애착인형이 없습니다. 육아서를 접한 적이 없고 육아라는 게 처음이었던 저는 애착인형이 없는 아이들이, 첫째만 그런 것도 아니고 둘째와 셋째마저 없으니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애착인형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엄마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아무 준비없이 첫째가 저희 부부에게 찾아왔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직후에도 '엄마야~'라는 말을 못 하고 어색하게 '안녕..?'하고 인사했습니다.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불렀지, 나 스스로를 엄마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기에 어색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젖을 쪽쪽 빨아대고 아기 특유의 향긋한 살냄새를 자꾸 맡고 반짝이는 두 눈망울을 바라보며 귀여운 옹알이를 들으니, 무뚝뚝한 저에게도 모성애라는 것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출산한지 한 달이 되면서부터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찰떡같이 말하면 콩떡같이 옹알이로 받아치는 아기가 너무 신기했습니다. 자꾸 눈을 마주치고 싶어졌습니다. 키가 50cm 고작 넘는 아기를 제 무릎에 뉘여놓고 자주 말해주었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해,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아이가 정말 어렸을 때에, 보통은 엄마 껌딱지라 아이와 스킨쉽이 없을 수가 없는데 아이가 독립하는 시기가 오면서 그 스킨쉽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유치원 시기에는 잠깐씩 안아주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오는 아이를 징그럽다며 밀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아이는 한결 같습니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동생이 있는 경우, 동생은 동생일 뿐이지요. 내색은 안 해도 오히려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큰 아이는 여전히 엄마에게 사랑받는 아이이고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상대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아이 하나하나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해 보세요. 초등학교에 갓입학한 첫째는 집에서나 '큰 애'이지 학교에서는 여전히 햇병아리,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째를 '큰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말하는대로 마음이 가기 때문에 큰애라고 부르면, 큰 애로서 마땅히 해야할 의무와 기대치가 생길 것 같아서입니다. 첫째는 셋 중에 큰 애이지, 사실은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어린 아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남들은 셋째가 예쁘다던데, 필자는 첫째 둘째 셋째 각자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셋째가 태어나기전 만삭이었던 저는 첫째 둘째의 사랑쟁탈전의 경계에서 늘 양쪽팔을 팔베개해주며 정중앙으로 누워서 잠들었습니다. 만삭 배불뚝이가 똑바로 눕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슬그머니 팔을 뺄지언정, 계속해서 양팔베개를 해주며 재웠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의 사랑을 원했으니까요. 몸이 불편해서 같이 뛰어놀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주지는 못 했지만, 잠 들때라도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며 행복하게 잠들게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7살이지만 여전히 엄마껌딱지였던 첫째는, 셋째가 태어난 어느날부터인가 혼자 구석에서 잠들더라구요. 얘가 많이 컸나보구나. 누울자리 보고 눕는다고 상황파악이 빨라졌나? 아무튼 엄마도와주는 첫째가 고마웠습니다. 저는 둘째를 팔배게해주며 셋째를 돌봐주면 되었거든요.
마침 집에 놀러온 이모가 묻습니다.
이모: 밤에 잘 때 혼자서 누워 잔다며. 그거 왜 그러는 거야?
돌아온 아이의 대답에 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첫째: 엄마가 힘드니까요. 저까지 팔배게해달라고하면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이모: 너는 어떤대? 괜찮아?
첫째: 저도 엄마 가까이에 있고 싶어요..
그러곤 뒤돌아서버렸다.
워낙 말수가 없고 속내를 말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제 뜻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속상했을 아이의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제 마음도 아려왔습니다.
내가 대체 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 않았던 거지?
현실적으로 첫째를 덜 품어줄 수밖에 없는 일이 사실일지언정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마음을 읽어주기만 해도 첫째는 마음아프지는 않았을텐데.. 그 동안 내가 늘 지향했던 게,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는데..
다시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더 많이 노력하자.
사랑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사랑의 눈으로 아이 말에 귀기울이자.
아진아, 아까 이모랑 한 얘기 들었어.
그 동안 엄마한테 오고 싶었는데 엄마품에서 잠들고 싶었는데 엄마힘들까봐 혼자 잠들곤 했던 거야?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엄마 눈시울도 붉어지고, 마음도 일렁입니다.
아진이의 엄마 생각해주는 그 마음 정말 고마운데, 그래도 일단 엄마한테 와. 와서 얘기해.
그 다음은 엄마가 알아서 할게. 엄마는 우리 딸이 가장 소중해! 아진이가 엄마한테 표현을 해줘야지 엄마가 아진이 마음, 생각 알 수 있어. 우리 아진이 그동안 마음 고생 정말 많았어. 사랑하고 축복해.
하루하루 육아가 지옥이 따로 없다구요? 그럼, 아이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이 주문을 외쳐 보세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리라(oo이 머리 위에 사랑을 더하리라)."
아이 이름도 넣어보시구요.
그럼 신기하게도 화난 엄마마음이 조금씩 풀려져 간답니다.
지금은 3,6,9살이 된 아이들입니다. 때때로 아이들 각자에게 사랑을 표현해줍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안아줄 때도 있고, 의식적으로 안아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말해줍니다. '사랑하고 축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