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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19. 2020

갑자기 찾아온 다크나이트  

어둠의 시대에 대해서

모든 일의 발단은

19살 음주운전자부터 시작되었다.

전신주가 넘어젔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했다.  

승용차는 전신주를 정면으로 들이박고

전신주는 승용차 운전석과 조수석으로 우연히도 안전하게 넘어졌다.

3명의 대학 초년생들은 모두 살았으나

1명만 남기고 모두 도주했다.


왕복 8차로 도로에 전선과 전신주가 쓰러져 있었다.

자동차는 경찰의 수신호로 역주행해서 앞으로 가야했다.


한명이 남은 이유는 그 차가 아버지차이기 때문이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 연발을 했고

학생은 병원가기를 거부했다.

구조상황도 없고, 아픈 사람도 없어

우리는 센터로 발걸음을 돌렸다.  

센터로 돌아오는데

한 쪽 건물의 아파트와 상가의 불빛이 갑자기 없어졌다.

한국전력에서 복구 공사를 시작했나보다.  

센터로 돌아오니,

비상발전기가 연결되어 있는

지령컴퓨터를 제외하고 컴퓨터도 다 꺼졌다.


속으로 카운터를 셋다.

하나, 둘, 셋, 넷....와우!


도미노처럼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동하는 길에 모든 불빛이 꺼진 도시를 보니,

다크나이트라는 영화가 괜시리 떠올랐다.

먼저 A아파트에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갖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하여 마스터키로 요구조자를 구했다.


그 아파트에서 기름타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조사를 해보니, 비상용 발전기가 등유를 태우면서 가동중이었던 것이다.


B아파트에서는 남편이 호흡이 안된다는 신고가 또 들어왔다.

아파트 전기가 나가면서 충전신 산소호흡기가 1시간밖에

가동을 못한 다는 것이다.

또 급하게 충전이 될 때까지 포터블 산소를 공급했다.

19살 음주운전자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다시 환한 세상이 된 것이다.

전기의 소중함은

전기가 없을때 알게된다

빛의 소중함은

다크나이트일때 알게된다


학생아. 그래도 고맙다

다크나이트라는 영화를 12년전에 봤는데

현실에서 잠깐 맛볼수 있게해서 다크나이트(night)에

우리가 다크나이트(knight)였다.

다음 날 은퇴하신 팀장님과 차 한잔을 먹으면서

어제 있었던 사건을 과장해서 이야기했다.

팀장님은 87년도에 서울에서 임용되었다.

그러면서 그것은 다크나이트도 아니라고, 삼풍백화점을

겪지 않았으면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사회적 재난중에 가장 큰 재난은 아마도 삼풍백화점과 세월호침몰이 아닐까 싶다.

삼풍백화점은 강남의 부의 상징이었다.

교대역과 강남터미널역의 중간지점, 현재는 아크로비스타란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는 그 곳이 삼풍백화점의 위치였다.


1995년 6살인 삼풍백화점은 붕괴했다.

팀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시멘트 잔해를 걷어내면, 산 사람도 보이고, 죽은 사람도 보였다고 한다.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백화점이니까, 여러 좋은 물건도 많았다. 그것들을 훔쳐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악마의 미소라고 하는 사진도 기억난다.

그 때가 대한민국의 소방관의 다크나이트였다. 

(사실 홍재동 소방관 순직사고가 소방계에서는 다크나이트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부실시공이 없었더라면,

흔들림을 감지하고 모두 탈출하라는 한마디만 하였더라면,

이런 망신도,  다크나이트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항상 깨달음에는 희생이 뒤따랐다. 난 그것이 슬프다.


어둠이 지속되는 시기를 다크나이트라고 칭해본다. 


나의 다크나이트도 생각해본다.

나의 다크나이트는 마지막 직장에서 월급이 안나올때였다. 

(여자친구가 쭉 없었을 때는 그냥 제외하자)

내가 가진 지적자산을 다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때였다.

그 때 내 나이 33살, 결혼 후 1년이 지났을 때,  

달콤해야 했던 신혼을

도시락 싸들고 도서관에서 보냈다.


소방공무원을 하고 싶었다.  

진정으로 절박하게

떨어지면 갈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배수진을 치고 연필을 들었다.


설날때, 친척들을 보기가 민망했고,

쓴 소리에 엉엉 울기도 했다.

장모님께 공무원 준비한다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가 나의  다크나이트 시절이였다.


하지만 절망뒤에는 희망이 있었다.

그 뒤로 중간정도의 등수로 소방관이 되었고,

딸을 낳았다.

중국어 관광통역사를 취득했고,

책을 2권을 발간했다.  

아내는 직업을 얻었다.

(사실 이 것이 가장 기뻤다)


다크나이트 뒤에도 해는 뜬다.  

당신의 다크나이트는 언제였나요?

지금인가요? 아니면 이미 지났나요?

조금만 견딥시다.

해는 뜹니다.

해는 곧 뜹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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