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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20. 2020

잘 가요. 상사.

나의 애도 방법  

띵동.

카톡으로 부고 문자가 왔다.

예전 회사에서 모시던 상사였다.

(중국에서 같이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다)

야간근무가 끝나고 집에 왔다.

정장을 입고 시동을 켰다.

1시간 50분의 거리.


1시간 50분 가는 시간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는

돌아가시기 전에 연락 좀 할걸! 이였다.

아무리 높은 분이지만,

그래도 나를 그렇게 아껴주셨는데,,

그 생각은 이렇게 연결되었다.

'역시 살아있을 때, 잘해 드려야 된다.

장례식장 가봐야

상사께서 나를 알아볼 일이 없잖아.

아무 의미가 없을 거야.'


30분쯤 지났을까?

경기도에 들어섰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장례식장에 가면 상주인 아드님에게

상사에 대해서 이런 분이었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것을 슬프지만,

그래도 더 자랑스러워하셔도 된다고

그 말을 하고 싶었다.

나의 애도 방법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영정사진 속에 상사에게 인사를 드렸다.

말로만 듣던

아들, 딸, 사모님을 보았다.

간단히 식사를 하면서 아드님께

아버지는 이런 분이었다고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나와 선진(홍콩 옆에 중국의 대도시)으로 비즈니스 트립도 갔었고

회사의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신년회, 송년회도 기획했다고(필자는 거기에서 사회를 봤다)

이익창출을 목표로 하는 회사에서


동아리를 만들면 개인에게도 회사에게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셨다고


영어를 무척 무척 잘했다고,

영어를 잘해 홍콩인들과 우리는 그의

영어에 박수를 쳤다고,


또 상사는 신입들 생각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유연한 생각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족 멤버들이

다 따로따로 산다고,

손을 들면서 no!라는 표정을 지었다고,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각자 꿈을 찾아가는 것은 좋지만,

가족이 함께 있어야 되는데,, 이거 아니야.

라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본인의 수행기사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인이라 말이 안 통하는 것이다.

상사는 영어를 하시고

중국인은 영어를 못하고 여하튼..

어느 자리에서 수행기사에게 당신과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긴 자신의 이야기를 내가 통역을 해 드린 적도 있었다.


여하튼 멋진 회사를 만들고 싶어하셨고

나도 회사 문화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고,


그리고 상사가 회사를 그만둘 때

많은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이 이야기를 아드님께 해드렸다.

아버지의 회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됐다. 내 할말은 다했다.


나는 다시 천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네요.

멋진 상사.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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