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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3. 2020

피는 계속 흘린다.

피에 대해서

추석이다. 처갓집에 가는 중이었다. 서울로 들어가는 어느 톨게이트다. 꽉 막혔다. 서울은 아파트 사기도 어렵지만 실제로 차타고 들어가기 조차 어렵다. 수많은 차들의 브레이크등이 보였다. 천천히 꾸억 꾸억 올라갔다. 서울로 진입하는 톨게이트를 마주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고속도로가 목동맥이라는 생각 말이다. 눈에 보이는 차들은 적혈구이자, 백혈구, 혈소판이다. 서울은 역시 뇌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서울은 뇌다. 그 기능을 분리하려 해도 아직까지는 뇌의 기능을 한다. 그 뇌에는 사회, 경제, 문화, 정치를 좌우하는 무언가가 들어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사람이 없다면 피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만큼 중요하다. 차가 차선을 벗어나면 사고이듯이 피도 혈관을 이탈하면 사고다. 오늘은 어쨌든 내가 드라큘라는 아니지만 피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조금 끔찍할 수도 있으니 일단 에피타이저로 피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건강이야기부터 한번 해본다.

 


가수 박진영은 건강을 피 중심으로 생각하자고  이야기한다. 피의 조성, 순환, 정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피를 만들려면 좋은 음식(유기농)을 먹어야 한다. 자동차로 비유도 가능하다. 피의 순환도 중요하다. 좋은 자동차가 있어도 좋은 도로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좋은 도로를 달려서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고 쓰레기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려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운동 역시 필수이다. 피의 정화를 위해서는 비타민C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비타민C는 쓰레기 차이다. 쓸데없는 것을 빼주는 그런..

박진영의 생각에 동의하고 실천한다. 좋은 도로와 좋은 차가 있어야 몸안의 세포에 좋은 것들을 전달해줄 수 있다. 하지만 피는 도로와 세포라는 집만을 오가야 한다.  그 밖은 위험하다. 그 밖을 나오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결국에는 죽을 수도 있다. 각종 외력에 의해서 피가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코로나가 한창인 어느 추석에 피를 보는 신고가 많았다.


의도적인 출혈이었다. 동거남이 동거녀를 칼로 찔러서 출혈이 있다는 신고다. 동거남도 죽어버릴 거라고 말하고 달아났다고 한다. 찍힌 주소는 어느 빌라였다. 분리형 들것을 가지고서 3층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는 피바다였다. 여성은 누워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낸다. 다친 곳을 찾아 하나하나를 보고 소독했다. 그리고 거즈와 붕대로 드레싱을 했다. 외력에 의해서 피는 피의 길을 벗어났다. 피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뿐더러, 몸을 파괴시키고 있다. 수많은 영화에서 보듯이 피는 피의 길에서만 존재해야 가치가 있다. 병원으로 그 50대 여성을 이동시키려 했다. 여성은 가까스로 입을 열고 한다는 이야기가

[그 남자는 죄가 없어요....]


이번에도 출혈 신고다. 이번에는 의도적이지는 않은 출혈이었다. 유리에 찔렸다고 한다. 주소지에 도착했다. 청년 2명의 눈이 다급함을 말해준다. 빨리 들어오라고 한다. 빌라 3층으로 들어갔다. 한 명은 문 쪽에 쓰러져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방 안의 베란다로 향하는 창문에 쓰러져 있었다.  창문의 유리는 별 모양처럼 깨져있었고 청년은 쓰러져있었다. 청년의 다리, 엉덩이는 크게 다쳤다. 창문틀을 안전하게 제거하고 청년을 옮겼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드레싱하고 붕대로 환부를 정성스레 감았다. 출혈이 너무 심했다. 무슨 사연인지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고 보호자인 다른 청년에게 왜 이런 사단이 벌어졌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사연인즉슨 청년 A가 자고 있었는데, 다른 청년들과 술을 먹고 있던 청년 B는 청년 A를 계속 건들었다고 한다. 청년 A는 자다가 화가 나서 일어나서 청년 B를 밀었다고 한다. 청년 B의 몸은 창문을 깼고 몸도 깨졌다. 과도한 장난과 유리의 위험성을 동시에 깨달았다.



 충북 영동에 갈 일이 있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노근리 평화공원이 보였다. 짐작 가는 바는 있어서 확인코자 평화공원으로 들어갔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이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요는 한국전쟁 당시 1950년 7월에 미군이 영동 노근리의 일반 주민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일단 왜 그랬을까 물었더니 아직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군의 공식적인 답변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학살했냐는 기록만이 남아았다.

철길에 주민들을 모아 놓고 총질을 시작했다. 소녀는 총을 맞아서 양쪽 눈알이 튀어나왔다.  [어머니 앞이 안 보여요. 이것 좀 떼어주세요] 어머니도 총을 맞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소녀는 나중에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서 어두운 세상을  60년 버텼다) 주민들은 움츠리고 있었다. 조금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곧바로 사격을 시작했다. 죽은 시체들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조금 전에 어미를 잃은 아기가 사래가 걸린 듯 운다. 그 소리에 미군은 또 미친 듯 총알을 퍼붓는다. [애 소리 때문에 우리 다 죽어요] 그때 애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한쪽 물가로 데려가더니 아이를 물속에 집어넣고 죽였다.  200명이 죽었고 20여 명이 살아남었다. 그리고 그 철길은 피로 물들었다.

미군에게 우리나라 주민은 무엇이었을까?

군대에서 명령이란 무엇일까?

나 자신부터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감사했다. 닥치고 감사했다. 지금 당장은 이런 전쟁이 없으니까 말이다. 역사의 진보가 평화를 지속해줄 것을 믿는다. 가끔 겪는 출혈 신고가 별것이 아닐 수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힘의 줄다리기는 멀어져간다.  냉전을 거치고 독재를 거쳤다. 또 촛불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요구하려고 피를 흘리지 않는다. 이 얼마나 값진 진보인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흘린 많은 피의 값을 우리는 공짜로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라디오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사진은 https://blog.naver.com/shkang47/222101406413에서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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