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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Dec 22. 2020

맞아요. 소방관은 손을 잡아주는 일이에요

어느 소방관의  요구조자 추락사건 구조일지

이 출동은 같이 근무하는 구급대원 권순재 반장님과 구급대원이 초등대처한 사건으로 권순재 반장님의 입장에서 재구성했습니다.


새벽 3시 반 다소 복잡한 신고내용으로 접수가 되었다. 폭행을 당했다. 피가 많이 났다는 신고였다. 영하 15도의 싸늘한 추위였지만 감염방지복을 입어서인지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출동한 지 3분이나 되었을까? 신고내용이 바뀌었다. 옆집에서 난간에서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신고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첫 지령서는 30층이고 이번 지령서는 28층이었다. 직감적으로 두 사건은 개별된 사건이 아니고 하나의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30층에 도착했다. 그때 경비원이 여기가 아니고 28층으로 가라고 했다. 구급장비를 들고 28층으로 갔다. 난간으로 가보니 어떤 남자가 걸려있는 것이다. 걸려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2층 위에서 추락이든지, 뛰어내렸는데 28층에 걸린 것이다. 머리는 아래로 향했고 무릎과 손으로 난간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아마 철봉에 무릎으로 지탱하는 자세를 연상하며 쉬울 것이다) 머리카락이 쭈볏쭈볏섰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하지만 창문도 잘 열리지 않았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잡는 것이었다. 자세가 손을 잡는 것 밖에 안돼서 일단 손을 잡았다. 온기가 느껴졌으나 남성은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술냄새가 느껴졌다. 손을 더 잘 잡기 위해서 창문을 여는 순간,

으악!!!!!!!!!!!!!


그 남성이 지탱하고 있던 무릎이 풀렸다. 그 남성이 지탱하고 있던 지점은 무릎과 손이었는데 무릎이 풀렸고 지구는 중력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중력을 극복하는 지점은  손의 력밖에 없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의 양손과 그 사람의 왼손, 손을 잡은 지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본능이었는지 그 남자의 오른손도 올라왔다. 다른 동료들이 그 손을 붙잡았다.

 나도 아드레날린이 분비가 되는지 꽤 오랜 시간을 버텼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니  경찰관들이 왔다.

3명씩 각 손을 잡았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는 경찰관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수갑으로 두 손을 연결하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찡그리면서 알겠다고 했다. 수갑을 그의 손목과 난간을 연결했다. 안전수단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범인이나 용의자가 못 도망가게 하는 수단으로 수갑이 쓰이던데, 바닥은 남성을 잡아당기려 하고 우리도 그 사람을 당기고 있다. 굴절차도 도착했다. 하지만 굴절차는 47미터까지 밖에 올리지 못한다. 층으로 환산하면 15층 정도이다. 여기는 거의 2배가 되는 28층의 높이이다. 구조대원도 도착했다.


구조대는 한 층 위로 올라가서 로프를 이용한  작전을 하기로 했다. 박구조대원은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발 한발 내려와서 그 사람과 마주했다. 나와 마주친 박대원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한 층 위에서는 다른 로프들이 내려와 몸의 몇 군데를 결박했다.  이제 나는 수갑을 풀었다. 

각각의 로프를 내리고 구조대원은 더 한층을 내려와서 그를 27층의 바닥으로 내려놨다.


요구조자에게서는 술냄새가 났다. 알고 보니 지인들끼리 말다툼을 하고 뛰어내렸다고 한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환자평가를 하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했다.


돌아오는 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두 힘을 합쳤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28층에서 신고를 늦게 해 주었다면, 내가 손을 놓쳤다면, 경찰관께서 수갑을 건네주지 않았다면, 구조대가 로프를 타고 내려오지 않았다면, 바람이 세게 불었다면, 각 층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 남성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나는 씁쓸했다.  맞다. 소방관은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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