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 환자와 참전용사
과거의 영광의 유효기간에 대해서
우리 할머니보다 2살 어렸다.
89세 할아버지가
머리가 어지럽다는 신고를 했다.
특정 약을 먹고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물어보니
그 약은 5년 전부터 계속 먹던 약.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었다.
응급실로 가는 내내 불만이 많았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원무과 직원은
할아버지에게 언질을 주었다.
"비용이 많이 나오실 수 있어요"
(비용을 높이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사람들이 하도 높이다 보니
언젠가는 이것도 표준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지금 겁주는 거냐며
원무과 직원을 윽박질렀다.
원무과 직원은 또 말했다.
"할아버지 신분증 좀 주세요!"
할아버지는 지갑을 꺼냈다.
지갑 안에서 6.25 참전증을 주는 것이었다.
직원은 이거 말고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안에 감추어진 주민등록증을 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6.25 참전증을 내민 이유도 있겠지만
자의건 타의 건 6.25 참전용사는 까방권이 있다고.
처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3년 전쯤에 6.25 참전용사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나이 87살 때.
전쟁상황에 대해서 여쭈어봤다.
제주도에서 1달 훈련받은 후에 바로 전장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의 나의 21살.
이미 결혼을 한 상태다. 52년인가? 김일성 고지에서 북한 군하고 대치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죽었는지 여쭈어 보니
1개 중대 3대 소대였는데 전우의 반이 그때
죽었고, 할아버지는 운 좋게 살았다고 한다. 북한군은 더 많이 죽었다고 한다.
혹시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 하면
소대원들이 가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하시는 말씀이 지휘관이 안 가는데
왜 가냐고 반문했다.
죽음의 생사의 기로인 그 시절이
화나지 않냐고 여쭈어보니,
국가의 의무니까 당연히 하셨다고 했다.
몇 년 전 국가보훈처 강릉지청에서 참전기록을 가지고 와서 한 달에 십수만 원씩 나온다고 한다.
처의 할아버지, 어지러운 할아버지.
를 포함한 13만 명이 625 참전용사이다.
그들이 한 분 한 분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를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6.25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무서움. 두려움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를 통해서 간접 경험했다.
그런 경외심이 있었다.
할아버지를 병원 베드에
넘겨드리면서
나는 평소에 안 하던 말을 했다.
"할아버지 수고하세요"
할아버지도 나에게 수고했다고 했다.
같이 탄 구급대원 지반장은
생각이 달랐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훈장이
뭐가 중요하냐는 것이다.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말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할아버지보다 3살 정도 많은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도 머리가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