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도 춤을 즐기는 법
나는 40대 후반이다. 무용수라면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다. 취미로 다양한 무용을 배우지만 예전처럼 ‘잘 추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가끔 함께 춤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번 생은 나는 여기까지야.’라고 말하곤 했다. 자조적인 말도 아니고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몸이 달라지는 걸 느꼈고 작년부터 갱년기가 와서 호되게 아팠었기 때문이다.
그런 낮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무용을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왜 몸을 쓰는 예술과 스포츠는 어릴 때 시작해서 비교적 젊을 때 은퇴하는지 역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배우는 속도와 몸이 바뀌는 것이 확연히 차이가 났고 어릴 때 시작해야 그 사람의 최대 역량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몸은 나이를 먹어도 변할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사소하지만 조금 더 다리를 높게 든다던가 까치발로 버틸 때 조금 더 안정적으로 설 수 있다던가. 뻣뻣한 등이 조금 더 유연하게 움직이게 된다든지 같은 사소한 것들이 춤을 뭔가 다르게 만들었다. 그렇다. 나는 조금씩 늘고 있었던 거다. 이 나이에도 말이다! 남들이 보면 잘 모르겠지만 하는 내가 몸을 쓸 데 다르다고 느낀다. 수업 끝나면 찍는 영상에서도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동작이 크고 깔끔해졌다. 몸을 쓰는 ‘가동 범위’가 늘어났고 힘이 없어 흔들리던 것이 개선되었다. 근력이 좋아지고 유연성이 는 덕이다. 물론 속도와 역량은 달팽이지만 말이다. 달팽이면 어떠랴? 느려도 가긴 가지 않는가?
처음 춤을 배웠을 때가 30살이었는데 그때도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서 조바심을 냈다. 열심히, 남과 경쟁하고 나 자신을 쥐어짜면서 배웠던 시절이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기량을 올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절은 끝났다. 계절이 지나면 옷을 바꿔 입듯이 내게도 새롭게 춤을 즐길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내실을 다질 때다. 조금 더 깔끔하게, 우아하게 움직여 보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려면 근력과 유연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아니, 좀 더 키워야 한다.
삶의 경험이 쌓인 만큼 내 마음이 세상에 더 열리는 만큼 내 춤은 달라질 것이다. 내면도 가꿔야 한다. 자비심과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만나고 싶단 마음이 든다.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즐기겠다고. 그러고 보니 이건 취미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같이 들린다. 중심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이고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 솔직하고 나답게 표현하는 춤사위, 그리고 이런 삶이 내가 그리고 있는 중년 이후의 내 모습이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번 생은 성공이라고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