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온 선생님

by 젤라의 일기장

오랜만에 한국무용 수업에 나갔다. 몇 달 쉬었으니 나는 다시 기본반을 등록했다. 기본반에서는 한국무용의 기본인 ‘굴신’이나 ‘원스텝’을 배우는데 이게 보기보단 어려운 동작이다.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것이 단순해 보이지만 호흡을 담아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호흡을 발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서 머리끝에 머금으세요.”

선생님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대략 이렇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라는 말인데 그렇다고 너무 숨을 빼지는 말라는 뭐 그런.’ 나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의 표현을 상상하며 선생님의 몸을 관찰한다. 역시 선생님의 움직임은 물이 흐르듯이 숨을 쉬듯이 선으로 연결된다. 나는 그럴듯하게 흉내를 낼 뿐 선생님 같은 움직임은 어림도 없다.


그런데 한 수강생이 내 눈에 들어왔다. 50대 후반쯤 되었을까.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입술 끝이 올라가 가만히 있어도 ‘웃는 상’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자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를 한다. 중년에 나이에 양 갈래 땋은 머리라니.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한 명씩 원스텝으로 걸어볼게요.”

선생님의 지시에 우리는 한 명씩 원스텝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 발 딛으며 호흡을 마시고 발을 떼며 내쉬고. 양 갈래 회원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구름 위를 걷는 듯 우아하게 ‘원스텝’을 하며 걸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이어져 아름다운 선을 만들었다.

“어! 회원님! 처음 아니죠? 한국무용 했죠? 딱 한국무용 교수님 스텝인데!”

선생님은 놀라서 눈이 커졌고 우리들의 일제히 그녀를 쳐다봤다. 초보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양 갈래머리 회원은 은은한 미소만 띄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참지 못하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한국무용 전공자시죠?”

몇몇 회원들이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귀를 쫑긋하는 것이 느꼈다.

“네. 사실은 한국무용 대학에서 가르쳤었어요.”

“아, 어쩐지.”

“그럼 그렇지. 남다르더라.”

“대학 교수로구먼. 그런데 왜 기초반에 오셨어요?”

어느새 양 갈래 회원을 둘러싸고 한 마디씩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실 제가 평양에 대학에서 한국무용 가르쳤어요.”

평양이란 말에 사람들은 눈이 번쩍 떠졌다.

“제가 재일교포거든요. 잠깐 한국 온 김에 수업 들어 봤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하고 서둘러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그녀의 말이 마음에 맴돌았다. ‘언제부터 춤을 췄을까? 어떻게 북한까지 가서 강의하게 되었을까?’ 길고 가는 눈매에 입꼬리가 올라가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부처님 같기도 하고 일본 인형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구름 위를 걷는 듯이 걷는 걸음이라니.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사람을 정말로 발바닥에서 숨을 들이쉬고 머리에 머금은 듯 보였다. 마치 ‘숨’이 살아서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것 같달까.


나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쉬어봤다. 그녀의 모습을 그리며 한 발을 딛었다. 내쉬며 다음발. 호흡을 하며 몸을 움직이니 몸이 더 잘 느껴졌다. 그렇게 걷다 보니 ‘내 몸’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살아 있다!’ 행복한 마음에 벅차올랐다. 나도 그녀처럼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를 지었다. 양 갈래 그녀는 비록 짧은 인연이지만 내게 몸으로 숨 쉬는 법을 알려준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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