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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Mar 24. 2023

<시간의 창 The Time Windows> 평론

조숙현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조이 조 Joy Jo

<시간의 창 The Time Windows>


“작품은 꺼져 가는 것이라는 유례없는 빛이 되어야 하고, 이 빛에 의하여 모든 것은 꺼져 가고, 작품은 긍정의 극단이 부정의 극단에 의해 확인되는 그곳에 존재하여야 한다.”

-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중.

 조이 조(Joy Jo)의 추상회화는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사유는 시간보다는 ‘공간’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혹은 시공간이 교차하고 뭉뚱그려진 어느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지점을 이야기한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의 출발 역시 ‘시간의 흐름’ 보다는 ‘공간의 웅얼거림’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저서에서 “시간은 절대적이고 선형적이지 않으며, 모두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시간은 선이 아니라 점의 형태로 산발적으로 존재한다” 라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을 시간의 개념에 적용한 이 이론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절대적인 타임라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점처럼 무수히 많은 각각의 개별 사건으로 존재하며, 그 속도와 존재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물리학자의 주장은 현대미술의 ‘타자성’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리스 블랑쇼가 예술 창작(글쓰기)이 작가의 자아 속에 잠재된 무수한 타자성을 인식하고 일깨우는 행위라고 지적한 지점과 만나게 된다.

Memories Of Big Ben, 2011, Joy Jo


조이 조 작가의 일기를 들여다본다. 작품은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고, 그 내면의 웅얼거림은 작품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노트는 비평의 소중한 파편이 된다. 작가는 런던 유학 시절, 전시 기회를 찾아 시간과 돈을 쪼개어 독일 프랑크프루트를 방문한다. 유학 생활은 대부분, 누구나 공평하게 가난을 맛볼 수 있는 기회와 이방인의 신분을 제공한다. 유학자의 고독한 정서 속에서 작가는 설상가상으로 드로잉 두 점과 명함을 잃어버리는 불상사를 겪게 되고, 황망한 심경으로 ‘유럽의 뉴욕’ 이라는 화려하고 고독한 도시의 야경 속을 서성이게 된다. <Memories of Big Ben> 이라는 제목의 이 추상 회화는 작가의 ‘잃어버린 시간’ 과 ‘프랑크푸르트의 차가운 야경’ 이라는 시공간을 기록한다. 2011년 신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시공간은 보편적이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즉 ‘동시대’ 적이지 않다. 이 기록에는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차가운 야경과 고독한 심상이 추상적인 덩어리로 남겨져 있다. 이 시공간은 점으로 산발된 집합이며 동시에 이미지의 미메시스이다.

겨울 새벽 Winter Dawn, 2023, Joy Jo


이번 전시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겨울 새벽> 역시 작가의 ‘문학적 공간’ 안에 존재하는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공간을 포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강원도 여행 중 새벽에 목도한 풍경을 추상 회화로 표현하고 있는데, 역시 여기에서도 주관적인 시간의 토막들이 산발적으로 남아 있다.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꼭짓점의 교차가 아닌, 클립 영상처럼 기록된 시공간의 중첩이 엿보이는 흥미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작가의 표현 경향 속에는 얼마간, 작가의 경험도 반영이 되어 있다. 작가는 영상을 전공한 경력이 있는데, 당시에도 ‘영상을 어떻게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고 한다. 움직이는 것, 운동성, 물리적 힘을 평면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회화 작가들의 열망은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조이 조 작가의 경우는 영상 미디어의 연속성을 회화라는 전통 매체로 표현하고자 하는 독특한 발상이 담겨 있다. 또한 추상 회화로 표현된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작가는 자신이 목격한 이미지의 모방과 작가의 내부에 축적된 감상을 함께 표현하는 매우 독특한 방식을 띠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관점에서 채택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의 회화이며, 또한 동시에 가장 솔직한 내/외부 시간의 ‘창(窓)’의 반영이다.

앞서 언급한 모리스 블랑쇼의 ‘타자성’은 조이 조 작가의 미래 화법에 대입해 봄직하다. 블랑쇼의 문학과 비평은 작가의 자아가 인식하는 진리나 절대성의 터무니없음, 지극히 주관적이고 산발적인 작가의 코기토(cogito) 한계와 ‘바깥’으로의 확장을 권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양자물리학자의 상대적 시간의 이론과 미묘하게 교차하는 이 주장은, 작가의 자아와 주관적인 시선과 관점이 전체적인 ‘우주’의 총합에서 지극히 미미한 하나의 점으로 존재하며, 또한 절대성을 띨 수 없다는 점에서 조이 조의 관념과도 닮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블랑쇼는 글쓰기를 비롯한 예술 작품의 모호함과 아름다움이 타자에 대한 분리, 더 정확히는 타자를 향해 이해의 손길을 뻗칠 때 그 가까스로의 제스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세대의 창 #1-#5 연작 The Window Of Generations #1-#5 Series, 2023, Joy Jo


<세대의 창>은 작가가 전시 준비 중 외할머니 상을 당하면서 겪은 개인적인 일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작가는 임종 직전에 눈 앞에 놓은 외할머니의 신체 중 손톱에 유독 시선이 머문다. 그 손톱은 작가의 손톱과 너무나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세대를 지나 되물려진 이미지와 실체에 ‘세대의 창’을 대입하기에 이른다. 상중에 이런 발상을 떠올렸다는 너무나 ‘작가적인’ 태도에 일단 놀라움과 함께 수긍의 제스처를 보낸다. 작가는 어떤 순간에도 작품에 몰두할 요소를 찾아다니는 존재이므로. 1) 손톱을 매개로 겹쳐지는 과거와 현재, 한 가족의 역사는, ‘시간은 흐른다’ 라는 환상을 완벽하게 배반하며 시대를 포개어 놓는다. 그러나 또한 이 작업이 더욱 흥미로운 포인트는, 비로소 작가의 작품에 등장한 ‘타자’ 로의 시선의 전환이 엿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작가의 그림에 새겨진 시공간은 오롯이 작가의 관점으로만 산재된 점이자, 주관적 인상의 총체였다. <세대의 창>은 이런 작가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나가되, 외부에 존재하는 사건과 충돌하고, 타자의 모호하고 흐릿하지만 존재하는 실체의 실마리를 붙잡고 있다.   

조숙현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1) “나는 사실은 사막에서 혼자 사는 이방인 같은 사람이야. 많은 것을 알지도 못해요. 야생 짐승처럼 들판 위의 잡초와 친하고, 밤 중에 별똥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고. 그래 가면서 작업을 해. 그것들이 나의 삶과 예술의 터전이 되어 주고 있지.” -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김순기 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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